우리 선조들은 겨울 중에 가장 추운 동지(冬至)가 되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동지 다음날부터 헤아려서 81일간을 구구(9x9)라고 하고 그 수만큼 매화를 그려놓고 하루 한 개씩 붉은색으로 채워 나갔던 것이죠. 그 그림을 “구구소한도(九九消寒圖)”라고 했는데요. 그렇게 81개의 매화를 다 채울 때쯤이면 경칩(驚蟄)과 춘분(春分)의 중간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그때 이 소한도를 걷어내고 뜰 앞에 핀 매화를 맞이한 것이죠. 지금처럼 따뜻하게 지켜줄 도구도 없이 긴 추위를 견뎌야 했던 그들은 고통을 예술로 승화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분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요즘 사순절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오늘은 사순절기의 마지막 주인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날이죠. 사순절(四旬節)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억하며 그 고난에 동참하기 위한 기간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소망하던 그리스도인들의 옛 흔적이죠. 고통과 아픔으로 가득한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부활’이라는 참 소망을 기대하며 40일간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선조들이 혹한 속에서 하루하루 구구소한도를 그리며 봄을 기다렸던 것처럼, 고통의 시간을 이겨낼 힘은 ‘부활’이라는 소망을 품고 하루하루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때 주어집니다. 죽음을 넘어서는 힘이 그리스도에게 있음을 깨달을 때, 그 죽음의 두려움도 이길 수 있는 것이죠.
겨울의 추위는 끝이 나고 벌써 봄이 찾아왔는데, 우리의 마음은 여전히 겨울에 머무는 느낌입니다. 코로나19는 끝이 나질 않는데, ‘n번방 사건’과 같은 마음을 더욱 힘들게 하는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니 말입니다.
우리의 삶을 너무 멀리까지 보려 하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취업도 어렵고, 지금의 자리도 불안하고, 사회적으로 두려운 일들이 또 생길 것만 같은 불안함에 견디기가 힘이 듭니다. 그렇다면 ‘하루’는 어떨까요. 봄에 만날 수 있는 붉은 매화꽃을 그림으로 채워가며 하루를 견뎌낸 조상들처럼, 고통과 아픔이 없는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의 삶으로 채워가며 하루를 견뎌내는 삶 말입니다.
오는 것은, 기다리기 때문에 옵니다.
‘온다’라고 말할 때, 거기에는 기다림이 전제되어 있을 때가 많죠.
기다리기 때문에 온다, 라고 표현하고,
기다림 때문에 온다, 라는 말은 완성됩니다.
봄이 오고, 눈이 오고,
시도 소금도, 살구꽃도, 사람도.. 오는 것.
거기에서 여기로 와주는 것.
그러니까 그때 오는 건 그냥 오는 게 아닙니다.
허은실 저, <그날 당신이 내게 말을 걸어서>(위즈덤하우스, 2019)에 나오는 표현입니다. 오는 것은 기다리기 때문에 오는 것이랍니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 무언가 혹은 누군가 올 수 있는 것이죠.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해질 거야” 라고 말하는 <어린 왕자>의 말처럼, 부활을 기다리고 소망하며 기쁨을 얻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 송이 한 송이 그림을 채워가며 소망한 봄이 찾아오듯, 우리의 소망도 반드시 현실로 찾아올 것입니다.
3월 한 달을 만나지 못했지만, 가끔 온라인으로 소식을 접할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물론 온라인 모임에 참여하지 못한 청년들이 더 많아서 아쉽기도 합니다. 코로나19가 속히 종식되고 기쁘게 마주할 날을 기대합니다. 오늘(4/5)부터는 다시 갈렙 청년부 예배를 시작합니다. 예배당에 나오지 못하는 청년들이 있어서 당분간은 유튜브 실시간으로 함께 준비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도 예배드리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금과 같은 사태에 어떻게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전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아침에는 인스타 '카드묵상' (인스타그램 id: @itwmc_caleb)으로, 매일 저녁에는 온라인 묵상 나눔을 시작하였습니다. 아침 묵상은 좋은 신앙서적을 짧게 나누고 있고, 저녁 묵상은 잠들기 전에 다른 기억 속에 잠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잠들기 바라는 마음으로 생명의 삶 본문을 택하여 10분 정도 나눔의 시간을 갖습니다. 저녁 묵상 나눔은 실시간 화상 채팅 어플인 zoom을 활용해서 참여할 수 있고, 끝난 후 저녁 11시에 유튜브(유동근목사 유튜브)에 업데이트 됩니다.
4월에 생일을 맞은 분들을 축하합니다. 장영철(1일), 장혜주(9일), 심규현(27일), 조요한(29일)입니다. 사순절입니다. 부활을 소망을 품는 기간이죠. 어려운 시간이지만, 참 소망의 주께서 우리를 붙들어 주실 것을 기억하며 살아갑시다. 갈렙 청년들을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2020년 4월 5일
유동근 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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