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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서신_THE LETTER TO CALEB

백의종군(白衣從軍) <제24호 (20200329)>

by reminder of Him 2020. 3. 29.

이순신 장군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중에 "백의종군"()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흰 옷을 입고 군대에 따라간다"는 뜻입니다. 조선시대 관료들은 모두 붉은색, 파란색, 초록색 등 자신의 벼슬에 맞는 색깔이 있는 옷을 입었습니다. 관료들이 흰 옷을 입고 군대를 따라간다는 것은 자신의 계급과 상관없이 전쟁터에 나가겠다는 모습이지요. 조선시대 무관이었던 이순신은 왕으로부터 그의 보직을 해임당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진왜란에 참전하여 목숨을 걸고 일본의 공격으로부터 조선을 지켜내는 공을 세웠습니다. 

 

 

옷(신분)을 벗겨 놓으면 그 신분에 대한 정신도 잃는 것이 보통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신분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본질을 붙들고 있는 사람은 진짜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코로나19 사태가 벌써 두 달이 지났습니다. 확진자가 계속 늘어나면서 사람 사이의 접촉을 줄이고 지역사회 감염을 최소화 하기 위하여 "사회적 거리 두기" 캠페인에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고 있습니다. 어느 건축 학자의 글을 통해 알게된 사실인데요. 미국의 문화인류학자인 에드워드 홀(Edward Hall)은 그의 저서 <숨겨진 차원(The Hidden Dimension)>에서 "임계적 거리"라는 표현으로 설명했다고 합니다.

 

나를 중심으로 대략 2미터 정도의 거리를 '사회적 거리'(Social Critical Distance)라고 규정하였습니다. 이 거리 안에서는 상대방의 행동에 불편을 느끼지 않고 독자적인 행동을 하는데 적절한 공간으로 보았죠. 이보다 가까운 영역으로 '친밀한 거리'(Intimate Critical Distance)가 있습니다. 0~46센티미터 거리의 친밀한 거리는 가족이나 연인처럼 친근한 사이에서만 허용이 가능한 거리입니다. 그리고 '개인적 거리'(Personal Critical Distance)도 있습니다. 46~120센티미터의 거리로 상대방이 예고 없이 이 영역 안으로 접근했을 때는 불편함을 느끼거나 상대방이 무례하다고 느낄 수 있는 자존의 영역이라고 합니다. (기사 보기

 

많은 교회가 정부의 이런 지침을 따라 예배당에 모이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영상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태원교회도 2월 23일부터 오늘(3/29)까지 벌써 여섯 번의 영상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한 청년에게 "이번 주일도 영상으로 예배를 드리냐고" 연락을 받았습니다. "기도제목이 생겨서 꼭 교회에 가서 기도를 하고 싶은데, 언제쯤 교회에 갈 수 있냐"는 질문이었습니다. 

 

비단 한 청년의 마음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두 모여 예배를 드리고, 마음을 나누는 교제를 하는 평범한 주일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는 시간이 되고 있을테니 말이죠. 

 

그리스도인에게 예배는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정의가 있고, 예배에 대한 생각이 있지만 예배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찬양과 기도와 말씀과 교제, 정해진 시간에 예배를 사모하며 모이려는 마음,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신앙을 성숙하게 하는 중요한 시간이 됩니다. 

 

그렇다면, 사회적 거리를 두어야 하기에 예배당에 모이지 못하면 우리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일까요? 이순신 장군이 무관의 옷을 입지 않아도 전장에 나가 국가를 위해 싸울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자신의 벼슬을 사랑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순신은 자신의 삶 자체를 사랑했고, 자신의 병사들을 사랑했으며, 조국을 사랑했기 때문에 백의종군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흔히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리에 의해 만들어진 정체성은 결국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신분과 상관없이 본질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너무 예배에 의존하고 있었던 이유일까요? 예배로 모이지 않으면서 나의 삶의 많은 부분이 무너지는 것을 봅니다. 사랑하지 못하고, 섬기지 못하며, 용서하고 희생하지 못하는 모습 속에서 내가 무엇을 사랑했었는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어쩌면 일요일에 점잖은 모습을 하고 예배당에 앉아 있는 모습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죠. 

 

 

백의종군의 대표적인 모델은 예수님입니다. 하늘의 보좌와 왕의 신분을 벗어두시고 맨 몸으로 이 땅에 내려와 맨 몸으로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화려한 옷을 입거나, 멋있는 신분을 얻으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평범한 사람들, 평범하지 못한 사람들과 함께 하셨고,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셨습니다. 분주하게 사느라 예배의 모임은 생각지도 못하는 자들을 찾아가셨고,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꿈을 심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죄로 가득한 인간들을 죽기까지 사랑하신 분입니다. 

 

아마 왕의 신분으로 오셨어도 인간들을 한없이 사랑하셨을 것입니다. 종의 신분이었어도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인간을 사랑하라는 하늘 아버지의 뜻을 이루셨을 것입니다. 어떤 의복과 상관없이 당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아셨던 분이죠. 예수님이야 말로 백의종군의 선구자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힘은 바로 예수님을 통하여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나옵니다. 예배당에 모여서 에너지를 받아야 생기는 힘이 아닙니다. 날마다 나의 삶에 함께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주어지는 것이죠. 

 

방 안에서만 지낸다고 우리의 삶이 감추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은 전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거룩함을 포장한다고 감추어 질 수도 없습니다. 사랑이 우선입니다. 내면을 그리스도로 채우며, 겉모습도 그리스도로 옷 입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3월에 생일을 맞은 이들을 축하합니다. 황진우(2일), 김준엽(6일), 장은지(25일), 김희라(26일), 최혜연(26일), 박미란(27일), 백성규(29일), 최수연(30일)입니다. 지난 저의 생일에 감동적인 선물을 보내주어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무실에서 영상을 보며 혼자 얼마나 감동했는지 모릅니다. 영상 예배를 위해 수고하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갈렙 청년들 정말 많이 보고싶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거리를 두며 이 시간을 잘 이겨내기를 함께 기도합시다. 주께서 우리의 마음을 붙드시고 이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게 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2020년 3월 29일

유동근 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