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교 날짜: 2019년 7월 21일
- 설교 본문: 출애굽기 5장 22절 – 6장 13절
- 설교 핵심: 우리의 부족함은 하나님의 채우심을 위한 공간이다
출애굽기 5:22-6:13
5:22 모세가 여호와께 돌아와서 아뢰되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이 학대를 당하게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5:23 내가 바로에게 들어가서 주의 이름으로 말한 후로부터 그가 이 백성을 더 학대하며 주께서도 주의 백성을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6: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보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그의 땅에서 쫓아내리라
6:2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이니라
6:3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6:4 가나안 땅 곧 그들이 거류하는 땅을 그들에게 주기로 그들과 언약하였더니
6:5 이제 애굽 사람이 종으로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 소리를 내가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6:6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여러 큰 심판들로써 너희를 속량하여
6:7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6:8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하셨다 하라
6:9 모세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나 그들이 마음의 상함과 가혹한 노역으로 말미암아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더라
6:1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6:11 들어가서 애굽 왕 바로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내보내게 하라
6:12 모세가 여호와 앞에 아뢰어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도 내 말을 듣지 아니하였거든 바로가 어찌 들으리이까 나는 입이 둔한 자니이다
6:13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사 그들로 이스라엘 자손과 애굽 왕 바로에게 명령을 전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시니라
#1. 서론: 관계의 역설
- * 요즘 이태원을 떠들썩하게 하는 곳이 있습니다. ‘노블레스’라는 곳인데요. 수입 가전제품을 파는 곳입니다. 청년들은 아마 잘 모를 거예요. 주부들을 대상으로 엄청난 선물을 뿌리고 있는 곳입니다. 제 아내도 이것저것 받아오더라고요. 지난주에는 가래떡을 또 받아왔습니다. 이 가게가 홍보를 이런 식으로 하는데요. 광고에 드는 비용을 아껴서 사람들에게 선물을 준다는 겁니다. ‘그러니 친구를 한 명 데리고 와라 그러면 더 좋은 선물을 주겠다!’ 그래서 뭐 이 사람이 끌려갔다가, 다음번에는 끌려갔던 사람이 다른 사람을 데리고 오고, 이태원이 지금 이 가게 때문에 떠들썩합니다. 아마 청년들은 모르겠지만 결혼 하신 분들 중에 아직 안 가신 분들이 없을 겁니다. 만약 안 가신 분이 있다면 꼭 가서 선물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 * 이 가게의 홍보 방법이 ‘다단계’ 구조의 회사와 비슷한데요. ‘네트워크 마케팅’이라고도 불리는 다단계 회사의 운영 방법은 이렇습니다. ‘A업체에서 생산한 제품을 B라는 사람이 구입하고, 마음에 들어서 C에게 추천을 하고, C가 A회사 회원이 되어서 A와 직접 거래를 하면 A는 B에게 제품 판매 이익의 일부를 수당으로 제공하는 개념’이에요. 그래서 A→B, B→C, C→D, D→E.. 이런 식으로 판매자와 소비자가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는 형태의 판매 구조를 가지고 있죠. 그리고 회사에서는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물건을 판매하는데 들어가는 막대한 홍보비용을 절감해서 이를 소비자에게 나누어준다.’ 는 아주 획기적인 방법처럼 보이죠. 소비자가 판매자가 되고 자신이 가입시킨 판매자의 수익을 나눠 갖는 형태입니다.
- 다단계 구조의 회사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닌데 크게는 두 가지의 문제점이 있어요. ① 첫 번째는 물건의 판매가 관계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관계의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이익을 위한 관계’가 되어 버리는 것이죠. ‘왜 이 물건을 나한테 안 사? 너는 친군데 어차피 사야 하는 거면 나를 통해서 사면 안 되니?’ 이런 약간 어색한 관계가 되는 겁니다. ② 더 큰 문제는 다수의 노역으로 소수만 혜택을 누리는 것에 있습니다. 열심히 일 하는 사람은 많은데 그 노동에 대한 충분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의 관계만 깨지고, 그 일로 인해서 혜택은 피라미드 형태의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만 누리는 겁니다. 그래서 다수의 사람들은 열심히 버텨서 꼭대기로 올라가던가, 아니면 죽을 때 까지 일만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죠.
-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이 이러한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한 때는 젊은이들의 이런 노력을 ‘열정 페이’라고 이름 붙이면서 함부로 사용하던 사람들이 있었죠. 물론 그 젊은 열정을 통해 일도 배우고 경력도 쌓을 수 있으니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겠죠. 그런데 가장 밑자리에 있는 시간이 너무 길게 지속되면서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결국 내가 이런 노동자의 계층에 있는 것을 ① 괜히 부모님의 탓으로 돌려 원망하거나, ② 스스로 좌절해서 살아가거나, ③ 노동자들끼리 서로 연합하지 못하고 싸우는 최악의 상황까지 갈 수 있는 겁니다.
#2. 본론Ⅰ: 절망으로 내려가는 모세
- 이런 일이 이스라엘 민족들 안에서 일어났습니다. 몇 주 전에 출애굽기 4장의 말씀을 나누면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불러서 말씀하셨죠. ‘애굽으로 가서 내 백성을 이끌어내라’(출4:12)고 말이죠. 그래서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들고 애굽으로 가는 그 모습을 우리가 함께 나눴잖아요. 뭔가 어떤 멋진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아주 멋진 ‘엔딩 장면’이었어요.
[출 4:20 ..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멋진 뒷모습이었죠? - 그렇게 모세가 아주 당당한 모습으로 바로를 만나서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출애굽기 5장 1절 말씀인데요.
[출 5:1 그 후에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멋있죠? 이 말을 들은 바로의 대답이 어땠을까요? 출애굽기 5장 2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출 5:2 바로가 이르되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가 누구냐?” 는 겁니다. “나 바로가 바로 이 위대한 애굽의 왕이고 신이다! 그런데 여호와는 누구냐?” 는 거예요. - 여러분, 우리만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하고 떨지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만 주일 안 지키면 벌 받을 것 같아서 억지로라도 나오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우리를 이상하게 봐요. 왜 쉬는 날도 씻고 화장하고 어딜 가느냐고 하며 이해 못할걸요? 그런데 그 신에게 돈을 바친다고? 더 이해 못할 겁니다. 아마 심한 분들은 종교를 어떤 돈벌이 정도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거예요. ‘어차피 인간들이 사는 게 다 똑같다’며, 예수 믿는 사람들을 이상한 사이비 집단처럼 여길 겁니다.
- 바로가 그랬어요. 그러면서 한술 더 떠서 바로 왕이 하는 말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가해서 예배니 뭐니 이런 말을 한다.’ 고 ‘게을러서 지금 노동자로 살고 있는 거라’고 생각(출5:8)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역을 더 힘들게 합니다. 재료를 스스로 구해서 벽돌을 만들게 하고(출5:7), 하루 동안 만들어야 하는 분량을 꼭 채우게 하고(출5:8a), 그 분량을 채우지 못하면 노동자들을 더 힘들게 한 겁니다. 그래서 너무 힘든 나머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에게 가서 ‘이런 대우는 너무 힘들다’ 고 이야기 했더니 바로가 이렇게 말을 합니다. 출애굽기 5장 17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출 5:17 바로가 이르되 너희가 게으르다 게으르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가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자 하는도다]
이 부분을 새번역 성경으로 읽어드릴게요.
[출 5:17 그러자 바로가 대답하였다. "이 게을러 터진 놈들아, 너희가 일하기가 싫으니까, 주께 제사를 드리러 가게 해 달라고 떠드는 것이 아니냐!(새번역)]
바로의 대답은 ‘너희가 게을러서 그런 것이다!’ 였어요. 피라미드의 최정상에 있는 바로가 지금 ‘너희의 고통의 원인은 너희 자신에게 있어!’ 라고 이야기 하는 겁니다. - * 이 부분을 읽는데요. 드라마 미생 1회 마지막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오징어통을 혼자 다 뒤지고, 동료들에게 버림받고, 회식에도 참석 못하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면서 주인공이 하는 말이 무엇이었냐면, “내가 열심히 했다고? 아니. 난 열심히 하지 않아서 세상에 나온 거다. 난 열심히 하지 않아서 버려진 것뿐이다.” (드라마 미생 1회 ‘장그래 대사’) 자신을 책망하는 모습이죠. 주인공이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요?
- 우리가 사는 이 사회가 우리를 그렇게 만들거든요. “너는 집안이 가난해서 그래, 그러니 너는 열심히 살지 않으면 나처럼 이런 자리에 절대로 오를 수 없어..” 그게 아니면 “게을러빠진 너의 근성 때문이다.” 라고 말하는 겁니다. 오늘 바로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너희들 게을러 터져서 지금 노예로 살고 있는 거라’ 고, ‘일은 안 하고 예배나 드리러 갈 생각이나 한다!’ 고 이야기 하는 거예요. ‘예배를 드리면 돈이 나오나 경력이 쌓이나?’
- 그러니 바로에게 이 말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습니까? 출애굽기 5장 19-21절 말씀을 새번역 성경으로 읽어보겠습니다.
[출 5:19 이스라엘 자손의 작업반장들은 매일 만들어야 하는 벽돌의 수를 줄일 수 없다는 말을 듣고서, 자기들이 곤경에 빠졌음을 알았다. 20 그들은 바로 앞에서 나오다가, 자기들을 만나려고 서 있는 모세와 아론과 마주쳤다. 21 그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당신들을 내려다 보시고 벌을 내리시면 좋겠소. 당신들 때문에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우리를 미워하고 있소. 당신들은 그들의 손에 우리를 죽일 수 있는 칼을 쥐어 준 셈이오.”(새번역)]
자신들을 구원하라고 보냄을 받은 모세와 아론에게 ‘하나님께서 당신들에게 벌을 내리면 좋겠다!’ 고 말 하는 겁니다. 문제는 억압을 하고 있는 바로에게 있는데,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싸우고 있는 상황인 겁니다. - 바로는 완강하죠, 백성들은 서로 싸우고 있죠, 모세는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인정을 못 받고 있는 거예요. 이번엔 뭔가 다를 줄 알았는데 그게 안 됩니다. 그래서 모세가 하나님 앞에 원망을 쏟아놓습니다. 오늘 읽었던 출애굽기 5장 22-23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출 5:22 모세가 여호와께 돌아와서 아뢰되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이 학대를 당하게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23 내가 바로에게 들어가서 주의 이름으로 말한 후로부터 그가 이 백성을 더 학대하며 주께서도 주의 백성을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차라리 나를 보내지 않으셨다면, 나도 힘들지 않고 저들도 하던 대로 일 하면서 그냥 살았을 텐데.. 왜 나를 불러서 이런 일을 시키고, 하나님은 아무것도 안 하고 뭐 하고 있느냐’는 겁니다. - 여러분 모세가 참 대단하지 않아요? 우리가 ‘출애굽’이라고 생각을 하면 뭔가 ① 모세가 부르심을 받고, ② 10가지 재앙이 있고, ③ 홍해를 ‘짠’ 하고 갈라서 잽싸게 건너가고, ④ 뒤 따라오던 애굽의 군대들은 다 죽고. 이런 정도의 이야기를 알고 있잖아요.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니깐 모세가 무척이나 이 과정을 힘들어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는 지금 또 다시 절망을 깨닫고 있는 것이죠.
#3. 본론Ⅱ: 우리의 부족함은 하나님을 채우기 위한 공간이다 - 그렇게 절망으로 치닫는 모세에게 오늘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나요? 출애굽기 6장 1절 말씀입니다.
[출 6: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보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그의 땅에서 쫓아내리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내가 직접 하마! 너는 그것을 보게 될 것이다!” 라고 말 하는 겁니다. 마치 이런 것이죠. “모세야 절망하지 마! 진짜 게임은 이제 시작이다!” 절망의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일 하시는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 어떤 새로운 모습인가요? 두 가지를 말씀하시는데요. 먼저 출애굽기 6장 2-3절 말씀입니다.
[출 6:2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이니라 3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나는 여호와다’ 내가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모세야! 내가 바로 너의 주인, 너를 보낸 하나님이다!’ 라는 거예요. 1) 조상들에게 나타나셨던 하나님은 그저 ‘능력의 하나님’이었지만, 이제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관계를 맺는 분이라는 겁니다. - 두 번째는 출애굽기 6장 4-5절 말씀입니다.
[출 6:4 가나안 땅 곧 그들이 거류하는 땅을 그들에게 주기로 그들과 언약하였더니 5 이제 애굽 사람이 종으로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 소리를 내가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2) 이전에는 내가 ‘언약’만 하던 하나님이었다면, 이제는 내가 그 ‘언약을 기억하는’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이렇게 말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참 매력 있는 분’이세요. 연애를 시작하면 처음에는 장점만 보이잖아요. 그러다가 점점 서로의 약점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전문용어로는 ‘콩깍지가 벗겨진다.’고 하죠. 그러면서 싸우기 시작합니다. ‘너는 도대체 왜 그래? 처음에는 안 그랬잖아! 변했어..’ 그 사람이 변한 게 아니에요. 내 눈에 콩깍지가 벗겨진 거죠.
- (* 대학 동기가 결혼한 지 10년이 다 되어 가는데 인스타그램에 남편 사진을 올려놓으면서 이런 말을 해요. “아직도 날 설레게 하는 사람” 멋있죠? 그런 사랑을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10년이 지나도 아내를 설레게 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오늘 모세가 지치고, 힘들고, 어쩌면 자신의 한계를 만난 것 같은 상황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제 나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게! 내 손이 얼마나 강한지 알게 해줄게!” 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죠. 출애굽기 6장 6-8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출 6:6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여러 큰 심판들로써 너희를 속량하여 7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8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하셨다 하라]
이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말 하라고 하십니다. 6-8절 사이에 ‘내가’와 ‘나는’이 얼마나 많이 들어가는지 보세요. 하나님께서 직접 일 하시겠다는 겁니다. - 오늘 말씀을 통해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은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우리의 부족함은 하나님의 채우심을 위한 공간이다.”
- 여러분 우리는 뭔가 2% 부족한 사람들을 볼 때 매력을 느끼지 않나요? 내가 좀 채워주고 싶은 마음 말입니다. 옛 말에 이런 말이 있죠. “못난 놈들은 서로 쳐다만 보아도 즐겁다.” 우리 주변에 쳐다만 봐도 즐거운 사람들 있잖아요. 부족한 사람에게 끌리는 이유는 나도 부족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가 편안한 것은, 그 베드로가 부족한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부족함을 통해 채워짐을 경험하는 사람들입니다.
- * 서우가 할 줄 아는 단어가 하나 있다고 말씀드렸죠. ‘아빠’입니다. 왜 아빠를 가장 먼저 배웠을까요? 아빠가 늘 집에 없어요. 그러니깐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서 ‘아빠’라는 단어를 가장 먼저 배운 겁니다. 그리고 지금은 ‘엄마’라는 단어를 하긴 하는데요, 그 말 전에 배운 단어가 있어요. ‘맘마’입니다. 늘 배가 고프기 때문에 살기 위해 배운 단어죠. 언어학자들에 의하면 말은 풍족하고 감탄스러울 때 배우는 것이 아니고 모자랄 때 배우는 것이라고 합니다.
- 우리의 부족함을 주님으로 채우시기를 소망합니다. 모세가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크심을 보여주셨습니다. 모세가 자신의 한계에 직면했을 때 하나님께서 한계를 넘어서는 자신을 보여주셨어요.
-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하죠. 고린도전서 12장 9절인데요.
[고전 12: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자신의 약함 안에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기 때문에 바울은 자신의 약함을 기뻐한 겁니다. 나의 약함과 부족함을 하나님이 채우실 공간으로 여길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예수님을 만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하나같이 절망의 상황에서 하나님을 만났다고 고백합니다. 피라미드의 정상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났다는 이야기는 아직 듣지 못했어요. 그러나 피라미드의 정상에 있다가 바닥으로 곤두박질 친 사람이 하나님을 만났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런 고통 속에서 자신이 한 없이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죠.
- 그런데 그런 부족함을 다른 방법으로 채우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지으셨을 때 선악과를 두신 이유는 인간이 넘을 수 없는 선, 곧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상기시켜주시는 상징이었죠. 그런데 사탄은 그런 인간에게 ‘선악과’를 먹어서 인간의 부족함을 넘어서라고 유혹했습니다.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 없이 어떻게든 해결하라고 유혹 한 것이죠. 그러나 선악과를 먹은 후 그 결핍이 해결이 되었나요? 아닙니다. 오히려 더 힘들게 되었죠.
-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모세가 자신의 말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반응을 하는데요. 9절의 말씀입니다.
[출 6:9 모세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나 그들이 마음의 상함과 가혹한 노역으로 말미암아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음의 상함과 가혹한 노역 때문에 모세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깨달았지만 하나님을 찾지 못해요. - 그러나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모세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출애굽기 6장 13절 말씀입니다.
[출 6:13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사 그들로 이스라엘 자손과 애굽 왕 바로에게 명령을 전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으로 하여금 바로에게 명령을 전하게 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십니다.
#4. 결론 - 우리의 부족함 가운데 하나님을 찾고 그분의 놀라운 일들을 발견하시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고통을 즐기라는 말이 아닙니다. 고통 중에 내가 누구인지, 이 세상이 어떠한 곳인지를 깨달으라는 말이에요. 왜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지,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지를 깨달으라는 말입니다.
-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찾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마리아에서 만난 여인은 목이 말랐죠.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했을 때 영원한 생수이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삭개오는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나무 위에 올라가 예수님을 보고 싶어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예수님을 만났죠. 삭개오는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기 위해 정말 열심히 살았던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 권력의 중심에 있던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만족하는 삶을 살았던가요? 아니에요. 늘 외롭고 힘들었습니다. 그 부족함을 돈으로, 권력으로 채우려고 애를 쓰던 사람이었어요. 그러나 채울 수 없었죠. 결국 다 내려놓고 나무위에 올라가서 예수님을 기다렸을 때 그의 삶에 진정한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 오늘날 우리가 사는 시대는 ‘무한 경쟁’의 시대입니다. 부족함을 감추기 위해서 끊임없이 달리고, 성공을 거머쥐라고 말 하는 시대에요. 그러다 조금이라도 뒤처지면, ‘네가 게을러서 그래, 집안이 그 모양이라 그래, 예배드릴 시간에 차라리 공부를 해라. 그러니깐 성적이 뒤처지는 거야!’ 라고 말하죠. 어떻게 해서든 부족함을 채울 방법을 찾으라고 말이죠. 그러나 오늘 모세는 또 다시 절망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그 절망 속에서 하나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합니다.
- 하나님은 왜 이렇게 우리를 절망까지 몰아가신 후에 당신을 보여주실까요? 그냥 처음부터 보여주시면 좋을 텐데 말이죠. 아마도 우리의 의지와 노력과 생각과 경험들로만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한 방법이 아닐까요? 그리고 하나님의 강한 손으로 일 하시는 것들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 “네가 보리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크심을 받아들이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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