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교 날짜: 2018년 11월 11일
- 설교 본문: 출애굽기 3장 1~10절
- 설교 핵심: 하나님을 만나고 나의 삶을 내어드릴 때, 주께서 우리를 사용 하신다
출애굽기 3:1~10
3:1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3: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3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3: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3: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3: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
3: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3:8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3:9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3: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1. 서론: 지칠 대로 지친 일상 속의 당신
- * 김광석이라는 가수가 있습니다. 그 가수가 불렀던 노래 중에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가 있어요. 가사가 이렇습니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 작기만 한 내 기억 속에 /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 점점 더 멀어져 간다 /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 비어가는 내 가슴속엔 /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영원히 청춘으로 머무를 줄 알았는데 정신없이 살다 보니 속은 비어 있고 서른도 넘어간다는 이야기죠. 서른 즈음인 청년들이 느끼는 감정이 이와 비슷한가요? - * 양희은氏의 <내 나이 마흔 살에는>이라는 노래도 있습니다.
“봄이 지나도 다시 봄 / 여름 지나도 또 여름 / 빨리 어른이 됐으면 / 난 바랐지 어린 날에 / 나의 열아홉 그 봄에 / 세상은 내게 두려움 / 흔들릴 때면 손잡아 줄 / 그 누군가 있었으면 / 서른이 되고 싶었지 정말 / 날개 달고 날고 싶어 / 이 힘겨운 하루하루를 / 어떻게 이겨나갈까 / 무섭기만 했었지 / 가을 지나면 어느새 / 겨울 지나고 다시 가을 / 날아만 가는 세월이 야속해 / 붙잡고 싶었지 / 내 나이 마흔 살에는”
빨리 서른이 되고 싶었는데, 그 때가 되면 날개를 달고 날아다닐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힘겨운 하루하루를 살다보니 마흔이 되어버렸다는, 가을이 지나면 또 금세 가을이 찾아오는 너무도 빠르게 지나가는 세월이 야속하다는 노랫말이죠. - * 제가 이제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어제는 일이 있어서 오후에 잠깐 신촌을 다녀왔는데요. 길거리에 젊은이들이 가득 한 겁니다. 소방서에서 나와서 무슨 행사를 하고 있었어요. 안전교육도 하고, 길에서 건강 달리기 행사도 하고 있었습니다. 한 때는 저도 젊음을 옷 입고 그 거리를 누빌 때가 있었죠. 그런데 어제는 제가 젊지 않은 겁니다. 거기 모여 있는 사람들이 너무 어려보이는 거예요. ‘준서’나 ‘자연’이 같은 아이들이 생기발랄하게 거리를 메우고 있는 것이죠. 그래도 이 젊은 감성을 즐기려고 스타벅스에 들어가서 제가 좋아하는 ‘콜드폼 콜드브루’를 시켰습니다. 멋지게 들고 젊음의 거리를 걸어갈 예정이었어요. 그런데 커피가 나오면서 저의 닉네임이 들리는 겁니다. ‘서준 아빠 고객님,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맞아요. 저는 곧 마흔을 바라보는 서준이 아빠입니다. 제가 이렇게 빨리 마흔이 될지 몰랐습니다. <서른 즈음에>를 부르던 때가 얼마 전인 것 같은데 벌써 <내 나이 마흔 살에는>을 부르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날아만 가는 세월이 야속한 때가 되었죠.
- 세월이 빨리 흐르는 것도 슬픈 일이지만, 그보다 우리를 더 힘들게 하는 것도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꿈만 꾸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세상이야!” 라고 말하는 긍정 과잉의 세상입니다. 우리는 부모님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어요. ‘너는 인생에서 원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무엇이든 될 수 있어!’ 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회에 나와 보니 무엇이든 할 수 없고, 무엇이든 될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서 우울해지고, 자존감이 낮아지는 겁니다. 이 무한 긍정의 사회가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2. 본론Ⅰ: 우리의 삶은 하나님을 만나기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 그런데 이런 문제가 오늘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읽은 말씀 속에 ‘모세’도 우리와 비슷한 처지로 살고 있었습니다. 1절 말씀을 읽어볼까요?
[출 3:1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모세가 지금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는 목자가 되었습니다. - 사도행전에서는 이 때 모세가 80세가 되었다고 말 합니다. 사도행전 말씀을 찾아볼까요? 사도행전 7:20-30입니다.
[행 7:20 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그의 아버지의 집에서 석 달 동안 길리더니 21 버려진 후에 바로의 딸이 그를 데려다가 자기 아들로 기르매 22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 23 나이가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볼 생각이 나더니 24 한 사람이 원통한 일 당함을 보고 보호하여 압제 받는 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애굽 사람을 쳐 죽이니라 25 그는 그의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통하여 구원해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그들이 깨닫지 못하였더라 26 이튿날 이스라엘 사람끼리 싸울 때에 모세가 와서 화해시키려 하여 이르되 너희는 형제인데 어찌 서로 해치느냐 하니 27 그 동무를 해치는 사람이 모세를 밀어뜨려 이르되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우리 위에 세웠느냐 28 네가 어제는 애굽 사람을 죽임과 같이 또 나를 죽이려느냐 하니 29 모세가 이 말 때문에 도주하여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 되어 거기서 아들 둘을 낳으니라 30 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 산 광야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
23절에 나이가 ‘사십’이 되었을 때 형제를 돌볼 생각을 했는데 그 일이 실패로 돌아갔고, 결국 미디안 광야에 도망가서 살게 되었고, 30절에 보니깐 ‘40년이 차매’ 천사가 광야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서 나타났다고 말 하고 있죠. - 그러니깐 한 때는 이집트 최고의 권력자의 아들로, 최고의 훈련을 받고, 최고의 교육을 받고, 꿈 많고 장래가 총망하다고 들어오던 왕의 손자였는데, 40세 때 쫓겨난 이후에 지금 80세가 되었는데 1절의 말씀을 보니깐 자신의 양 떼도 아닌 ‘장인의 양 떼’를 치는 목자가 되어 있는 겁니다.
- 왕의 손자이니 젊어서는 큰 꿈을 꾸지 않았겠어요? ‘너는 하고 싶은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어!’ ‘너는 되고 싶은 어떤 사람도 될 수 있어!’ 라는 말을 들으며 자라지 않았을까요? 자신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40년을 살았는데, 이제는 80세가 되어서, 장인의 집에 얹혀살며 광야에서 양을 치는 목동이 되어 있는 겁니다.
- 40세 이후의 모세는 아마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겠다는 꿈은 사라지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정말 쓸모없는 사람이다.. 언제까지 이 지긋지긋한 일을 반복해야 하는가..’ 이런 생각들을 묵상하며 살지 않았겠어요? 광야에서 양을 치며 누구와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 누구도 조언을 해줄 수 없는 상황에, 부정적인 생각의 생각을 거듭하며 살지 않았겠어요?
- 그런 그의 삶에 오늘 어떤 일이 일어났나요? 주님이 그를 만나 주신 겁니다. 2-3절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출 3: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신 겁니다. 모세는 그의 인생 80년 만에 처음으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 그런데 성경이 모세의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 참 재밌습니다. 모세는 120년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태어나서 40세가 될 때 까지는 출애굽기 2:1-22 을 할애해서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40살부터 하나님을 만나는 80세가 되기까지 40년은 출애굽기 2:23-25까지 3절로 기록이 되어 있어요. 그러나 모세가 하나님을 만난 이후의 삶, 80~120세 까지의 삶은 출애굽기 3:1부터 40장까지, 레위기 1~27장, 민수기 1~34장, 신명기 1~36장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양으로 기록되어 있죠.
- 오늘 첫 번째로 나누고 싶은 말씀은 1)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을 만나기 이전과 하나님을 만난 이후로 나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애인을 사귀기 이전과 사귄 이후, 결혼을 하기 이전과 한 이후로 나뉘는 것이 아니에요. 취업을 하기 이전과 취업을 한 이후로 나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은 우리를 그렇게 나눌지 몰라요. 그러나 하나님은 아닐걸요.
- * 우리는 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쓸 때면 고민을 하죠. 도대체 나는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에 빈 칸을 채울 말이 없는 것이죠. 제가 이태원교회에 이력서를 낼 때도 이력서에 쓸 말이 없는 거예요. 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한 교회에서 전도사를 8년 했으니 무슨 이력이 있겠어요. 자격증이라고는 운전면허자격증 하나뿐인걸요. 그래도 정성껏 써야 목사님이 감동하실 테니, 8년 동안 사역한 것들을 정리해서 자기소개서를 8페이지로 썼습니다. 그 안에 사진도 넣고, 그래프도 그리고, 표도 그리고, 설교문도 몇 개 더 넣어서 총 14페이지로 만들어서 보내 드렸던 기억이 나요. 억지로 길게 쓰느라 며칠 밤을 새며 썼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봤자 저의 이 땅에서의 이력은 14페이지뿐인 거예요.
- 그러나 하나님을 만난 이후에 우리 삶에 쓰여질 이야기들은 14페이지를 넘어 140페이지를 넘는 일들이 쓰일 줄 믿습니다. 세상은 우리의 이력을 보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을 만난 이후의 삶을 보신다는 것을 기억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한 삶의 이야기가 바로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우리의 이력서가 되는 것입니다.
#3. 본론: 특별한 일을 다시 생각하고, 말씀을 고민하라 - 그렇다면 오늘 모세는 하나님을 어떻게 만났나요? 2-3절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출 3: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모세는 떨기나무에 불이 붙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건조한 광야에서 떨기나무에 불이 붙는 일은 지극히 평범한 일이었다고 해요. 그런데 유심히 보니깐 조금 특별한 거예요. 불이 붙었는데 나무가 사라지지를 않는 겁니다. - 그런데 그 장면을 본 모세는 일단은 그냥 지나쳐 갔던 모양이에요. 3절에서 모세가 이렇게 혼자 생각을 합니다.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봐야겠다. 떨기나무가 왜 타지 않지?’ 라고 생각하며 ‘돌이켜 가서 보겠다’ 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처음엔 그냥 지나쳤던 모양이에요.
- 그런데 돌아가면서 그 장면이 계속 떠오르는 겁니다. ‘어? 뭐지? 좀 이상했는데.. 나무가 왜 안탔지?’ 라고 생각을 하면서 되돌아갔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만나주신 겁니다. 4절이에요.
[출 3: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도 그가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 겁니다. 그리고 다시 오는 모세를 부르신 겁니다. - 저는 이 부분을 묵상하면서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어요. 그것은 바로 ‘다시 생각하기’와 ‘고민해보기’입니다. ‘무엇을 다시 생각하고 고민해야 하는가?’ 그것은 나의 인생에 일어난 ‘특별한 일’을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고민해보는 것입니다.
- 오늘 여러분과 나눌 두 번째 말씀은 2) “다시 생각하고 고민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에 일어나는 특별한 일 속에 우리는 때로 하나님의 역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제가 9살 어린 아내를 만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저는 그렇게 믿어요. 저희 가정에 두 자녀를 주신 일은 하나님의 특별한 역사입니다.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일이기 때문이죠. 특별한 일들 속에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어요.
-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고민해보는 것’입니다. 모세는 집으로 가며 고민했어요.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의 답을 찾아가다가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어요.
- * 501년 전에 젊은 사제였던 ‘루터’는 고민했습니다. ‘교회가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가?’ ‘면죄부를 사면 정말 죄가 다 없어지는가?’ 그리고 성경을 보았더니 그게 아닌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보는 게시판에 자신의 생각을 적어 놓았습니다. “회개하라! 너희의 삶이 바뀌는 것이 회개이지, 면죄부 산다고 해서 그게 해결 되냐!” 이런 식의 글을 적어 놓은 겁니다. 그런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에 공감을 하게 된 겁니다. 그래서 루터가 당황했죠. 자신은 그냥 인터넷 게시판에 자신이 고민하던 것을 올린 건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댓글을 달고, ‘좋아요’를 눌러준 거예요. 그래서 처음에는 로마 교황청에서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가 일이 점점 커지니깐 이 젊은 사제를 잡으려고 했고, 루터는 도망 다니면서 종교 개혁의 불을 지핀 겁니다.
- 여러분 고민해야 합니다. 제발 덮어놓고 믿지 마세요. 일단은 하나님의 말씀을 좀 읽으세요. 읽어야 고민을 하죠. 누군가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나를 그냥 믿는다고 말한다면 기분이 좋을까요? 물론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인가 하는 착각을 하겠죠.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의심이 생길 겁니다. ‘나한테 뭘 뜯어내려 하나?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나를 믿는다고..’ 하나님도 그렇지 않겠어요? 성경도 읽지 않고, 고민도 하지 않는 채 ‘예수를 믿는다고, 괜히 사랑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면 눈물이 나고, 죄인이라는 이야기를 하면 숙연해지고..’ 아무런 고민도 없이 감정적으로도 이렇게 반응할 수 있어요. 여러분 고민하셔야 합니다. 말씀을 읽고 질문을 던지셔야 해요. 우리의 사고와 사유는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하는 소중한 동력이 됩니다.
- 설교를 들으면 열심히 들어보시고 찾아와서 질문하세요. 예화만 기억하지 말고, 제발 말씀을 기억하시고 질문하세요. 지금 청년의 때에 질문하지 않으면, 그런 신앙의 태도가 계속 굳어지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 말씀을 믿게 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믿게 됩니다. 기준이 말씀이 되는 것이 아니고, 오랜 시간 신앙생활을 한 내가 기준이 된다고요. 그러면 신앙이 자라는 것이 아니라 전문 종교인이 되어버리는 것이죠.
- * 서준이가 언제부턴가 영어를 읽어요. 갑자기 알파벳을 보면서 “M”이라고 소리를 치는 거예요. ‘이 아이가 신동인가?’ ‘영재 스쿨을 보내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알파벳 “T”를 보면서 “M”이라고 하는 거예요. “S”를 보면서도 “M”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냥 알파벳만 보면 “M”이라고 하는 것이죠.
- 그런데 우리의 신앙생활이 이럴 때가 있지 않나요? 어떤 말씀을 보아도 고민하지 않고 ‘하나님이 왕이시지’,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자야’ 이런 틀에 박힌 한 가지 대답만 하고 계시지 않나요? 청년들 모여서 성경 통독 모임도 만들고, 아침 묵상 모임도 만들고, 고민하고 묵상하는 모임을 만드세요. 그래서 여러분의 목사님을 좀 피곤하게 만드시라고요. 박목사님이 여러분들을 얼마나 좋아하십니까? 평소에는 그렇게 근엄한 모습으로 있는 분이 청년들만 오시면 “~했다요!” 이러면서 반기시잖아요. 여러분이 성경을 들고 고민하고 질문할 때 목사님은 행복한 겁니다.
- (* 지난번 가을 특별새벽 부흥회 때 신천지에서 교리를 가르치다가 개신교로 다시 회심하신 목사님이 오셨어요. 그분이 말씀을 전하시다가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신천지가 교회에 오면 데리고 갈 사람을 파악한답니다. 아주 상세하게 파악을 한데요. 그리고 신천지에 데리고 갈수 있는지 등급을 매긴다고 해요. A등급은 ‘시간이 많고, 성경에 관심이 많고, 교회에 원망-불평-교만한 사람’ 이랍니다. 그런데 절대 데리고 가지 않는 D등급이 있어요. ‘시간은 많은데 성경을 전혀 읽지 않는 사람, 평생을 통틀어 1독도 하지 않은 사람’이 여기에 속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안도의 한 숨을 쉬었어요. ‘우리 청년들은 참 다행이구나..’ 성경에 그렇게 관심이 많아 보이지 않아요. 신천지가 또 젊은이들에게 접근할 때 카페에서 훈남과 훈녀가 접근을 한답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하다가 종교 이야기를 꺼내고, 같이 성경 공부를 하자고 하는 것이죠. 여러분 혹시 카페에서 훈남이나 훈녀가 찾아오면 의심하세요. 일단 자신을 의심하세요. ‘내가 과연 훈남에게 주목받을만한 사람인가?’ 장난입니다. 훈남이 찾아와서 종교 이야기 한다고 너무 좋아하시지 말라는 이야기에요. 신천지입니다. 경계하세요. 밖에서는 성경 공부 하지 마세요. 그리고 제발 좀 성경에 관심을 가지시라는 겁니다. 교회 안에서 말이죠.)
- 모세가 자신의 삶에 일어난 특별한 사건을 다시 돌이켜 생각하고, 질문을 던졌을 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나의 삶에 일어나는 특별한 일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말씀을 붙들고 고민할 때 하나님을 만나는 길로 나아갈 줄 믿습니다.
#4. 본론Ⅲ: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비전을 발견하는 것이다 - 마지막입니다. 5-10절까지 말씀을 읽겠습니다.
[출 3: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 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8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9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드디어 모세를 만나주셨어요. 80년 만이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세의 이야기는 들을 생각이 없고 ‘신을 벗으라’고 하시더니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으시는 겁니다. - 너무한 것 아닌가요? 80년 동안 그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는데요. 애굽 왕궁에서 주워온 자식으로 살기를 40년,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려다가 동족에게 버림받고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기를 40년, 그 80년의 삶에 대해서 한 마디라도 해 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미안하다’ 라던가, ‘힘들었지?’ 라던가 한 마디만 해주면 되는 건데, 다짜고짜 신을 벗으라니요. 그러면서 자기 이야기만 7절부터 10절까지.. 4절에 걸쳐서 쏟아 놓고 계신 거예요.
-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어떤 감정적인 위로나, 평안, 이런 것이 아니구나.’ 물론 하나님은 우리를 위로하시는 분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이에요.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 모세가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하나님은 당신의 비전 – 이스라엘 민족의 고통을 보고, 듣고, 알고, 직접 가서 그들을 구원하시겠다는 – 비전을 보여주시는 것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과 마지막으로 나눌 말씀은 3) “하나님을 만나는 일은 그분의 비전을 발견하는 일”이라는 겁니다.
- 그런데 오늘 말씀 속에 그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은요. 이미 모세에게 한 번 주셨던 비전이었어요. 그가 40세 때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구원하고자 했거든요. 하나님은 지금 모세에게 ‘그 때 모세 안에 주셨던 그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같다’는 이야기를 쏟아 놓고 계신 거예요. ‘모세야, 네가 40세 때 꿈꾸었던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고 싶었던 그 마음이, 모세 너의 것이 아니고 사실은 나의 마음 이었다! 네가 그토록 간절하게 살리고 싶었던 이스라엘 민족들, 너보다 내가 더 살리고 싶다! 나는 사실 더 오래전부터 계획하고 있었다!! 그것은 너의 비전이 아니라 나의 비전이고 나의 꿈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비전만 보여주시는 분이 아니라, 그 일을 직접 이루어나가실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당신의 비전에 동참시키기 원하시는 분이기 때문이에요.
- *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예수님의 비전을 심어주셨습니다. 베드로 혼자 그 비전을 찾아보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내가 리더가 될 테니 너는 나를 따라오라’ 고 하시며 사람을 살리는 예수님의 비전에 베드로를 동참 시키신 것이죠. / 하나님은 예수님은 바울에게 예수님의 비전을 심어주셨어요. 바울을 만나셨을 때, 이스라엘 민족만이 아니라 온 열방에 복음을 전하기 위한 예수님의 비전에 바울을 동참 시키신 것이죠. / 오늘 하나님은 애굽에서 고통 받는 이스라엘을 살리시려는 당신의 비전에 모세를 동참시키신 겁니다. 이런 분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입니다.
- 나의 삶을 당신의 비전을 이루시는 일에 사용하시겠다는 그 하나님 앞에 우리의 삶을 맡겨 드릴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셔서 당신의 일을 이루어 가실 줄 믿습니다.
#5. 결론 - 서두에 불렀던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처럼 우리의 젊음은 연기처럼 사라져갑니다. <내 나이 마흔 살에는>처럼 날아가는 세월이 야속하기만 할 때가 올 거예요. 그러나 그런 수많은 시간들보다 소중한 것은 1) 하나님을 만난 이후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시간입니다. 2) 그 하나님은 우리가 삶에서 일어나는 특별한 사건을 다시 생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고민할 때 만날 수 있어요. 그리고 3)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비전을 보여주시는 분이세요. ‘나에게 이미 주셨던 그 비전, 그 마음 포기하지 말고 살라고. 이제 그 비전을 하나님께서 이루어가겠다고’ 하시는 것이죠. 나를 그 하나님의 계획안에 넣어주시는 겁니다.
- * 나들목교회의 김형국 목사님이 《만나지 않으면 변하지 않는다(생명의 말씀사, 2017)》라는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해요.
“신기한 일입니다. 예수를 만난 사람들은 그와 사랑을 주고받는 데서 머무르지 않고, 예수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자신의 인생을 걸려 하고, 실제로 그렇게 살아갑니다. 자기만 생각하는 자기중심성을 벗어나 이웃을 위해 사는 법을 배웁니다. 눈앞에 보이는 것에만 매달렸는데,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와 세계를 위해 살아갑니다. 받고 얻는 것으로 기뻐하던 사람들이 주고 나누며 기뻐하는 사람으로 변해갑니다.” - 여러분 이 하나님을 어찌 우리가 모른 척 하고 살 수 있겠어요. 이런 하나님 없이 우리가 어떻게 단 하루라도 살 수 있을까요? 날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따라, 우리도 우리의 삶 전부를 하나님께 드립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우리도 함께합시다. 주께서 반드시 우리를 통하여 당신의 일을 이루어 가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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