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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_SERMON/출애굽기_EXODUS

그 소리를 들으시는 분 (출 2:11-25)

by reminder of Him 2020. 3. 25.
  • 설교 날짜: 2018715
  • 설교 본문: 출애굽기 211~25
  • 설교 핵심: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사람 말고 우리의 아픔을 공감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이다

출애굽기 2:11~25

2:11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한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2:12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 속에 감추니라

2:13 이튿날 다시 나가니 두 히브리 사람이 서로 싸우는지라 그 잘못한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매

2:14 그가 이르되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 모세가 두려워하여 이르되 일이 탄로되었도다

2:15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는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 곁에 앉았더라

2:16 미디안 제사장에게 일곱 딸이 있었더니 그들이 와서 물을 길어 구유에 채우고 그들의 아버지의 양 떼에게 먹이려 하는데

2:17 목자들이 와서 그들을 쫓는지라 모세가 일어나 그들을 도와 그 양 떼에게 먹이니라

2:18 그들이 그들의 아버지 르우엘에게 이를 때에 아버지가 이르되 너희가 오늘은 어찌하여 이같이 속히 돌아오느냐

2:19 그들이 이르되 한 애굽 사람이 우리를 목자들의 손에서 건져내고 우리를 위하여 물을 길어 양 떼에게 먹였나이다

2:20 아버지가 딸들에게 이르되 그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그 사람을 버려두고 왔느냐 그를 청하여 음식을 대접하라 하였더라

2:21 모세가 그와 동거하기를 기뻐하매 그가 그의 딸 십보라를 모세에게 주었더니

2:22 그가 아들을 낳으매 모세가 그의 이름을 게르솜이라 하여 이르되 내가 타국에서 나그네가 되었음이라 하였더라

2:23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2:24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2:25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1. 서론: 불통의 사회

 

  1. * 2015년에 이슈가 되었던 스웨덴의 한 통역가가 있습니다. 토미 크롱이라는 사람인데요. 이 사람이 통역을 할 때 온 몸을 다 쓰면서 통역을 하는 거예요. 왜 그렇게 통역을 하는지를 물어보았더니 노래를 듣지 못하는 이들에게 노래의 느낌까지 전하고 싶어서 그렇게 했다는 겁니다. 영상을 하나 보여드릴게요. [영상#1 불통사회의 통역] 토미크롱과 글동무에 대해서 손석희 아나운서가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지금 설명해드린 이 두 가지의 사례를 놓고 본다면 통역은 단순히 언어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옮겨서 공감을 전하는 작업일 수도 있습니다. .. 우리 사회에도 같은 언어를 쓰지만 통역이 필요한 일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렇죠. 통역은 단순히 언어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옮겨서 공감을 전하는 것입니다.


  2. * 소통이 잘 안 되는 경우는 남녀 사이에도 있습니다. 재밌는 영상을 하나 더 보여드릴게요. [영상#2 남녀의 차이] 재밌죠? 영상 속의 여자는 남자가 그저 자신이 아프다는 마음을 헤아려주길 원하고, 남자는 그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둘 사이에 소통이 잘 안 되는 것이죠.


  3. (* 이성교제에 대한 강의를 듣다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한 여인이 남자 친구에게 오빠 나 신도림역에서 영숙이 만났어.” 라고 이야기를 한 거예요. 그래서 남자가 이렇게 대답을 한 거예요. 그래서, 커피 마셨어?” “아니” “밥 먹었어?” “아니” “다음에 만나기로 했어?” “아니” “그럼 그 이야기를 나한테 왜해?” “왜 하긴, 나 신도림역에서 영숙이 만났다니깐!” 남자는 이 이야기를 꺼낸 여자 친구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여자들은 다르게 반응을 한다는 거예요. 나 신도림역에서 영숙이 만났다!” 그러면 그 여자 사람 친구는 70~80%는 이렇게 대답을 한다고 해요. 웬일이야! 너 영숙이 만났어?” 그러면 제3의 여자 사람 친구는 내가 보내지도 않았는데 ~ 너 영숙이 만났다며!” 그렇게 대화가 이어진다는 거예요. 아직 이해하기 어려운 놀라운 세계입니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이런 차이가 있죠.)


  4. * 그러나 꼭 이렇게 소통이 안 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알바생의 마음을 잘 헤아려준 어떤 편의점 사장님의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한 편의점 사장님이 알바생들에게 꼭 지켜야 할 수칙이라고 이야기 하면서 몇 가지를 이야기 했어요. 그 중에 한 가지를 말씀드리면 부당한 고객에겐 절대 머리를 숙이지 말 것: 자신이 맞는 서비스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당한 것을 요구하거나 욕설을 하는 고객에겐 절대로 고개를 숙여 사과하지 마세요. 손님이 왕인 것은 사장인 내가 근무할 때뿐임. 고객보다 여러분들이 소중합니다. 정말 노답인 경우에는 경찰신고+맞쌍욕을 허락합니다.” 힘들게 일 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 준 것이죠. 사실 이건 대단한 일이 아니거든요. 사장님이 아르바이트생 마음을 헤아려 주는 일이 뭐 그리 어려운 일인가요? 그들의 입장에서 한 번만 생각해 보면 할 수 있는 일이에요.


  5. 그런데 이게 잘 안 됩니다. 서로의 언어와 표현이 통역이 안 되기 때문이죠. 자녀와 부모 사이에 오해가 쌓이죠. 또 남자와 여자 사이에, 또 갑과 을 사이에 나타나는 이 불통의 간격을 줄이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전부 자신이 가장 힘들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서로의 마음이 전달이 되지 않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 마음을 헤아려줄 시간도 없기 때문입니다.


    #2. 본론Ⅰ: 옳고 그름을 판단해 줄 사람 말고, 공감의 사람이 필요하다

  6. 오늘 말씀 속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된 일을 하고 있었어요. 11절에 보니깐

    [출 2:11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더니 .. ]

    이스라엘 백성들은 육체적으로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일이 힘들기도 했지만 아마 기다림에 지쳤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이런 이야기 하셨거든요. 창세기 15:13-14을 보니깐

    [창 15: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14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사백 년 동안 이방에서 나그네가 되어서 고통을 받다가 하나님이 그 나라를 징벌하면 큰 재물을 가지고 나갈 것이라 고 말이죠.


  7. 그러니 고통을 받고 있지만 약속을 기다리며 버티고 있지 않았겠어요?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그 때가 안 오는 거예요. 출애굽기 12장 말씀을 보니깐 이들이 애굽에서 거주한 지가 사백삼십 년이 되었을 때 애굽 땅에서 나갔답니다. 그러니깐 이미 약속하신 400년에서 30년이나 더 지난 거예요.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몸도 힘든데 기다리는 임은 안 오고, 400년도 힘든데 30년을 더 기다렸다니.. (군대 2년도 긴데, 2주 만 더 하고 나오라면 얼마나 힘들어요.) 고된 노동을 하고, 기다림은 끝이 없고, 자녀들은 태어나면 다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지, 정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8. 그 때 이스라엘 백성에게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나타났어요. 바로 모세라는 사람입니다. 오늘 읽지 않았는데 10절 말씀을 읽어볼까요?

    [출 2:10 그 아기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의 이름을 모세라 하여 이르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

    바로의 딸이 건져낸 한 아기가 있었습니다. 이름이 모세에요. 건져내다’ ‘구원하다’ ‘대단한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멋있게 한 사람이 등장을 하죠.


  9. 그리고 그 모세가 어른이 된 겁니다. 11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출 2:11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한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모세가 왕궁 바깥세상을 보러 나갔더니 사람들이 고되게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들을 보는 모세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는 가 하면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라고 표현을 하는 겁니다. 모세가 애굽의 공주의 아들로 살고 있었지만 자신이 어느 민족인지에 대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거예요.


  10. * 사도행전에 말씀에 보니깐 스데반 집사님이 설교하면서 모세가 장성했을 이때를 ‘40로 보더라고요. 사도행전 7:22-23인데요. 제가 새번역 성경으로 읽어드릴게요.

    [행 7:22 모세는 이집트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서, 그 하는 말과 하는 일에 능력이 있었습니다. 23 모세가 마흔 살이 되었을 때에, 그의 마음에 자기 동족인 이스라엘 사람의 사정을 살펴 볼 생각이 났습니다.(새번역)]

    그 때 모세가 어떠했냐면 말과 일에 능력이 있었다는 거예요. 그리고 히브리 민족을 자기 민족으로 여기는 마음도 있었던 것이죠.


  11. 모세가 참 잘 자랐어요. 어떻게 보면 모세는 부모에게 버림을 받은 아이거든요. 젖을 먹을 때 까지는 키웠겠죠. 그런데 그 어린 아이가 부모를 떠나서 애굽 왕의 궁전에서 지냈다면 그가 과연 올바른 생각을 가진 아이로 자랄 수 있었을까?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 있었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모세는 부모 없이도 잘 자란 편입니다. 당시 최강국인 애굽에서 최고 권력자 바로 왕의 손자로 40년 동안 최고의 교육을 받고, 최고의 훈련을 받으면서 자랐거든요. 그런데다가 자기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정말 괜찮은 사람이죠.


  12. 훈련된 잘 준비된 지도자! 그래서 모세가 40살이 되었을 때 민족을 구원하는 일을 합니다. 11-12절을 보니깐

    [출 2:11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한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12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 속에 감추니라]

    자기 동족을 그를 괴롭히는 애굽의 관리로부터 구원합니다.


  13. 이렇게 잘 자란 모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사도행전에서는 이렇게 기록을 해요.

    [행 7:25 그는 그의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통하여 구원해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그들이 깨닫지 못하였더라]

    하나님께서 자기이 손을 통하여 구원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는 거예요. 이런 거죠? 어머니는 왜 나를 애굽 왕궁으로 보냈지? 난 왜 어린 시절을 부모님 없이 보내야 하는 거지?’ 그렇게 자라다가 이런 저런 교육을 받고 힘을 쌓은 후에, ! 그렇구나! 부모님이 나를 이곳에 보낸 이유가 있었어! 나를 통해 우리 민족을 구원하려는 것이었어!’ 이런 생각을 스스로 한 거예요.


  14. * 여러분 혹시 이런 생각 한 적 없어요? 나는 좀 특별한 사람이라는 생각이요. 나는 뭔가 남들과 달라’ ‘내가 버스를 기다리면 꼭 와~’ ‘내가 음식점에 들어가면 갑자기 식당에 사람이 많아져..’ ‘나는 뭔가 특별한 사람인가?’ 이런 생각.. 저만 하는 군요? (* 제가 한 번은 ‘아! 난 정말 특별한 사람 인가봐!’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제가 늦게 신학교에 들어갔잖아요. 그런데 감리교회의 역사 수업을 듣는데,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 이야기가 나오는 거예요. 존 웨슬리 목사님께서 ‘올더스게이트’ 거리에서 로마서 서문을 듣고 있을 때 ‘내 가슴이 이상하게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는 표현을 쓰셨거든요. 그런데 제가 신학교로 부르시는 하나님을 만났을 때 딱 그 느낌이었거든요. 오! 그래서 그 수업을 듣다가.. ‘헐.. 대박.. 나랑 똑같잖아..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 목사님의 회심과 나의 회심이 똑같다니.. 난 정말 특별한 사람인가보다..’ 그러면서 막 내가 무서운 거 있죠. 괜히 말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될 것 같고. 내가 막 감리교를 일으켜 세울 사람이 될 것 같고. 한 때 그런 망상에 빠졌던 적이 있죠. 지금은 그냥 이렇게 평범하게 목회를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15. 모세가 그랬거든요. 대박! 나를 왕궁으로 보내신 이유를 이제 찾았어! 역시.. 이 세상은 내가 필요해!’ 이런 생각이었거든요. 그렇게 동족 한 명 구했잖아요. 그래서 그 다음날 왕궁 안에 있지 않고 또 나가요. 13절이에요.

    [출 2:13 이튿날 다시 나가니 두 히브리 사람이 서로 싸우는지라 그 잘못한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매]

    나가서 서로 싸우고 있는 동족들 두 사람을 보면서 누가 잘못했는지를 가르쳐 줘요. 그 잘못한 사람에게 이르되..’ 모세는 지금 백성들에게 옳고 그름을 가르치는 사람이 된 겁니다.


  16. 잘 준비된 지도자 모세. 그런데 그를 대하는 동족들의 반응이 어떠한가요? 14절입니다.

    [출 2:14 그가 이르되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 모세가 두려워하여 이르되 일이 탄로되었도다]

    이 동족들은요. 모세를 인정하지 않아요. 왜 그랬을까요? 모세는 같은 민족 같지만 왕궁에 살고 있는 애굽 왕의 손자거든요. 어차피 모세의 인생과 이 가난한 노동자들의 인생은 다르거든요. 모세가 애굽 관리 한 명 죽여준다고 이들의 힘든 삶이 나아지는 것이 아니거든요.


  17. 그러나 이들이 모세를 인정하지 않은 더 중요한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은요 지금 옳고 그름을 판단할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어요. 그들에게는 위로자와 구원자가 필요했던 겁니다. 누가 맞고 누가 틀렸는지를 가르쳐 줄 사람이 아니고, 단지 서로 사랑해야 할 자신들이 왜 이렇게 다투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줄 사람이 필요했던 겁니다.


  18. * 연인과의 관계에서도 그렇죠. 남자친구가 내 편을 좀 들어줬으면 좋겠는데, 그 오빠는 자꾸 문제 해결을 하려고 해요. 회사 욕하면 더 흥분해서 쌍욕을 해 주길 바라는데, 자꾸만 넌 군대를 안 갔다 와서 그래.. 세상살이가 뭐 쉬운 줄 알아!’ 이런 이야기나 하면 정말 정떨어지죠.


  19. 우리는요 정말 그런 사람이 필요해요. 나의 아픔을 좀 공감해주는 사람이 필요해요. 너는 이게 잘못되어서 힘든 거야. 나 때는 더 힘들었어!’ 이런 이야기 하는 사람 말고요. 정답 말 해주는 사람 말고, 그냥 아픔을 헤아려주는 사람이 필요하죠. 나도 내가 잘못한 것을 알고 있으니깐 모세처럼 누가 잘못했는지, 그렇게 하면 왜 안 되는지 알려주는 사람 말고.. 그가 왜 그런 잘못을 저지르게 되었는지 함께 아파하고 함께 공감해줄 사람이 너무나 필요해요. 괜찮다고, 조금 실수해도 괜찮으니 다시 해 보자고. 나도 넘어졌었고 나도 실수 많이 했다고.. 지금도 실수한다고..’ 그런 공감이 사람을 살려요. 힘이 되더라고요.


  20. * 필립 얀시가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이라는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슬픔과 고통에 찬 우리네 세상에 그렇게 실적이 뛰어난 자신만만한 사람들은 사실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잠시 우리 동네사람들만 생각해 보아도 고통에 빠진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뇌 손상을 입은 자식 때문에 앞이 캄캄한 가정도 있고, 문란한 성생활과 싸우는 동성애자도 있고, 말기 암 진단을 받은 사람도 있고, 졸지에 일자리를 잃은 사람도 있다. 이들 뿐 아니라 너나 할 것 없이 누구나 외로움, 교만, 가끔의 우울, 두려움, 소외 같은 통상적 인간조건과 싸워야만 한다. 우리가 작은 생채기와 멍, 큰 골절과 망연한 정신적 상처를 가지고 갈 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 바로 교회다. 교회는 우리가 고통을 가져 갈 수 있는 곳이다. 교회를 세우신 분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자기 몸을 찢으셨기 때문이다.”

    그렇죠. 공감과 이해야 말로 교회가 꼭 가져야 할 중요한 요소입니다.


  21. (* 사도 바울이 전도 여행을 다니다가 비시디아 안디옥이라는 지역에 갔어요. 그리고 거기 살고 있는 유대인들의 회당에 들어가서 ‘힘을 주는 말’을 합니다. 이런 말씀이에요. [행 13:38 그러므로 내 형제들이여, 예수를 통해 죄 용서함 받을 수 있다는 소식이 여러분에게 선포되고 있음을 알기 바랍니다. 39 여러분이 모세의 율법으로는 의롭게 될 수 없었던 모든 것에서도 예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의롭다고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우리말성경)] 이들이 모세의 율법을 지키느라 너무 힘이 들었던 거예요. 그게 안 되거든요. 그런데 바울이 와서, ‘그걸로 너희가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로 인하여 의롭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해주니깐 너무 위로가 되고 공감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 사람들이 다음 주에 와서 똑같은 이야기를 또 해달라고 해요.)


  22. 모세는 지금 자신이 구원자가 된 것처럼 행동을 했어요. 조기 유학했죠. 말도 잘 했죠, 능력도 있었죠,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도 있었고요. 나이도 어느 정도 되었죠. 세상이 보기에 성공한 사람이었어요. 준비된 리더였죠.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를 그들의 지도자로 받아주지 않아요. 모세에게 공감하는 능력이 전혀 없었거든요. 문제를 해결하려고만 했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헤아려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거든요.


    #3. 본론Ⅱ: 나를 위로하시는 유일한 분

  23. 모세는 그렇게 동족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애굽 관리를 죽인 사건이 바로 왕의 귀에 들어가서 도망자가 됩니다.

    [출 2:15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는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 곁에 앉았더라]

    미디안 광야에 가서 살다가 한 여인을 만나 결혼을 했어요. 그리고 그의 심정을 그가 낳은 아들의 이름으로 표현을 했습니다.

    [출 2:22 그가 아들을 낳으매 모세가 그의 이름을 게르솜이라 하여 이르되 내가 타국에서 나그네가 되었음이라 하였더라]

    게르솜이라는 이름에는 그 땅의 나그네라는 의미가 있고, 내쫓다라는 의미가 있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깐 자신이 살던 곳에서 내쫓기고, 낯설고 두려운 땅에서 나그네로 살게 되었다는 그의 마음이 담은 것이죠.


  24. 구원자로 보였던 모세는 우울함에 빠졌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아무런 희망의 빛도 없이 누구도 이해해 주지 못할 것 같은 상황이 되었습니다. 애굽 왕이 죽었는데도 여전히 고통이 끝나지 않았어요. 그러나 그 때 비로소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분이 계셨어요. 바로 하나님입니다. 23절을 읽겠습니다.

    [출 2:23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출애굽기에 이제 하나님이 등장해요. 1장부터 바로 왕이 괴롭히고, 애굽의 온 백성이 이스라엘 남자 아기들을 죽이려는 감시자가 되고, 왕이 죽고 몇 해가 지나도 여전히 상황은 변하지 않고 계속 고통스러운 날들을 보내고 있는데, 누구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는 그 때에,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거예요. 책망하거나, 변명을 하거나, 정답을 말씀하시지 않고 다만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거예요.


  25. 24-25절을 보니깐

    [출 2:24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25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주어가 전부 하나님이에요. 하나님께서 직접 들으시고, 기억하시고, 돌보시고, 그들을 생각하신다는 겁니다.


  26. 인간은 인간의 마음을 온전히 헤아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 외로운 삶을 살아요. 내 마음을 다 이해하고 헤아려줄 사람은 이 세상에 없어요. 아내가요? 남편이요? 불가능합니다. 자녀들이요? 자녀들은 부모님의 깊은 뜻을 결코 알 수 없어요.


  27. (* 정말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갔어요. 그런데 아내가 두 아이를 돌보다가 더 지친 모습으로 잠이 들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가까이 가서 ‘여보 고마워~’ 이렇게 속삭이는 감동적인 순간이었어요. 그런데 아내가 ‘간지러워~ 자는데 건드리지 마!’ 라고 하는 거예요. 이해할 수 있어요. 졸리니깐.. 그래서 첫째 아들에게 갔어요. ‘아빠가 놀아주지 못해 미안하다~’ 라고 하면서 뽀뽀를 해주는 감동적인 순간이었어요. 아들이 짜증을 내면서 얼굴을 돌렸어요. 맞아요. 우리는 외롭습니다.)


  28. * 최근에는 잘 울지 않던 둘째 아들이 밤에 우는 거예요. 안아주고, 달래주고, 기저귀도 갈아주고 다 해봤는데 계속 울어요. 이유가 뭐였을까요? 배가 고픈 거예요. 엄마가 주는 모유를 먹고 다시 잠들고 싶었던 겁니다. 아빠인 내가 해결해 줄 수 없는 일이었어요. 엄마만이 해줄 수 있는 일이었어요.


  29.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있어요. 편안한 집이 있고, 든든한 직장이 있고, 먹을 것이 있고, 이 세상의 많은 것들로 나를 달래봅니다. 그런데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어요. 그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분은 오직 한 분이에요. 나를 지으신 하나님입니다. 그것을 깨닫는 것이 신앙의 시작이에요. 그것을 깨닫는 것이 정말 큰 은혜죠.


  30. 애굽에서 고통 받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필요한 것은, 옳고 그름을 판가름해줄 어떤 지혜롭고 능력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함께 아파하며, 그들에게 주신 구원의 언약을 기억하실 하나님입니다.


    #4. 결론

  31.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간단하게 네 가지로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문제 확인: 먼저 우리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깨닫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왜 고통을 받고 있는지를 분명히 구분할 줄 알아야 해요. 서로가 힘들어서 서로를 죽여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하는 문제라는 것을 깨달아야 해요. 공감: 문제를 깨닫는 사람은 많지만, 공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문제가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주어야 해요. 나의 마음을 헤아리고 이해해 주어야 합니다. 해석: 이제 우리에게 주어지는 문제를 성경의 가치관으로 해석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언약을 기억하신 것처럼, 우리도 말씀에 비추어 올바로 해석해야 하죠. 순종: 올바르게 해석했다면 이제 순종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부르짖었죠. 행동하지 않으면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문제를 찾고, 공감하며, 말씀으로 비추어 보고, 순종하며 나아갈 때 반드시 하나님을 경험하는 일이 우리 삶에 나타날 것입니다.


  32.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보십니다. 우리를 벌 하시려고 하나하나 기록해 두시려고 지켜보시는 분이 아니고, 우리의 아픔을 헤아리시려고 우리를 지켜보세요. 날마다 나를 바라보시는 하나님 앞에 내 마음을 다 내어놓고 그분의 위로하심을 받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