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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_SERMON/출애굽기_EXODUS

이유 있는 담대함 (출 14:10-14)

by reminder of Him 2020. 3. 27.
  • 설교 날짜: 201981
  • 설교 본문: 출애굽기 1410-14절 
  • 설교 핵심: 나를 보내신 분이 있음을 알고, 그 보내신 분을 알아가는 것이 담대함의 이유다

출애굽기 14:10-14

14:10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14:11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14:12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14: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14: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1. 서론: 호가호위(狐假虎威)

 

  1. * 사자성어 중에 호가호위”(狐假虎威)라는 말이 있죠.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서 호기를 부린다.’는 뜻으로, 남의 세력을 빌어서 위세를 부리는 것 을 말 하죠. 사실 호가호위라는 사자성어는 부정적인 의미로 시작된 말은 아니었습니다. 그 유래를 살펴보니깐 중국의 춘추전국(戰國)시대에 초(楚)나라에 있던 일인데요. 그 나라에 ‘소해휼’(昭奚恤)이라는 재상(왕을 보필하는 최고 책임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소해휼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 주변 국가들이 이 ‘소해휼’이 두려워서 감히 쳐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그 소문이 왕에게까지 들어간 것이죠. 왕은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왕인 내가 아니라 재상이 두려워서 주변 국가들이 떨고 있다니!’ 그래서 그 불편한 마음을 신하들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그랬더니 신하 중에 ‘강을’(江乙)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대답을 하는 거예요. “전하,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호랑이가 여우를 한 마리 잡았습니다. 그러자 잡아먹히게 된 여우가 말했습니다. ‘잠깐 기다리게나. 나는 하늘로부터 백수의 왕에 임명 되었다네, 자네가 만일 나를 잡아먹으면 하늘의 명령을 어긴 것이 되어 천벌을 받을 것이야. 내 말이 거짓말이라고 생각되거든 어디 나를 한 번 따라와 보시게. 나를 보면 어떤 놈이라도 두려워서 달아날 테니..’ 그렇게 말을 하고 여우가 앞장서고 호랑이가 뒤따라갔습니다. 정말 만나는 짐승마다 달아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짐승들은 여우 뒤에 있는 호랑이를 보고 달아난 것이지만, 호랑이는 그것을 깨닫지 못한 것이었죠.” 그러면서 그 ‘강을’이라는 신하가 이어서 이런 이야기를 한 거예요. “전하, 주변 국가들이 소해휼을 두려워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소해휼을 두려워해서 겁을 내는 것이 아니라, 실은 소해휼의 배후에 있는 왕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참 지혜로운 신하죠? 그렇게 왕의 분노를 잠재울 수 있었습니다. 이 사자성어 호가호위라는 이렇게 사용되던 말이었다고 그래요.


  2. 우리는 살아가면서 두려운 일들을 많이 만납니다. 미래가 불안하잖아요. 특별히 졸업을 앞두고 있을 때, 군 입대를 앞두고 있을 때, 군 제대를 앞두고 있을 때, 삶의 어떤 변화가 찾아올 때면 더 불안합니다. 특별히 청년의 때엔 직업, 연애, 결혼등의 고민을 많이 하잖아요? 지금 교제하고 있는 이 사람과 영원히 함께 할 수 있을지, 지금 교제하는 사람이 없는데 영원히 혼자가 되면 어떡할지, 모아놓은 돈은 없는데 나이는 들어가고 결혼은 할 수 있을지, 번듯한 직업을 아직 구하지 못했는데 과연 일을 할 수 있을지.’ 많은 고민 앞에서 위축되는 때가 청년의 때입니다.


  3. * 청춘 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의 대표이면서 작가인 장재열가 이런 이야기를 했더라고요. “이전 세대의 사람들도 열심히 뛰었고, 우리 세대도 열심히 뜁니다. 멀리서 보면 열심히 달리는 똑같은 두 사람이지요. 하지만 분명한 건, 이전 세대는 ‘평지 위’에서 달렸다는 겁니다. 각자 달리기의 차이는 있지만, 열심히 달린다면 예전보다 1cm라도 앞으로 가는 느낌을 분명히 받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우리 세대는 ‘러닝머신’ 위에 서 있는지도 몰라요. 열심히 뛰면 현상 유지, 가만히 서면 뒤로 밀려가는 것이지요. 그리고 러닝머신의 끝엔 낭떠러지가 있고요. 열심히 뛰면서도 공포에 질려있는 모습들. 조금 이해가 가시나요?” 열심히 살고 있지만 제자리걸음 같다고 느끼는 세대가 바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입니다. 열심히 뛰면서도 불안함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것이 청년들입니다.


  4. 이런 불안함 가운데 사는 우리들은 힘이 필요합니다. 담대할 수 있는 힘 말이죠. 남들보다 조금 더 많은 소유, 남들보다 조금 더 많은 지식, 남들보다 조금 더 많은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힘이 생기지 않겠어요? 그런데 여러분, 만약 자신이 가진 능력과 잘남이 남들 앞에서 담대할 수 있는 이유라면, 나의 실력과 능력과 소유를 등에 업고 호기를 부린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남들과 다른 점이 무엇이 있다고 말 할 수 있을까요?


  5. 성경에 등장하는 세상 앞에 담대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읽어보면, 그들은 세상보다 가진 것이 많았고, 배운 것이 많아서 담대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보내신 분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자신을 보낸 그분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세상 속에서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6.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등에 업고 호가호위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담대할 수 있는 이유는 나의 힘과 능력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이 계시고, 그분이 어떤 분인지 분명히 알기 때문입니다. “담대하세요! 힘을 내세요!”






    #2. 본론Ⅰ: 진퇴양난(進退兩難) 앞에서 1) 두려움 2) 희생양 3) 기준 흔들림

  7. 오늘 큰 두려움 앞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모세의 이야기를 통해서 두려움과 담대함의 이유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8. * (배경)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과 광야의 경계선에 서 있습니다. 애굽에서 나오긴 했는데 아직 가나안에 들어가진 않은 상황이죠.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애굽의 왕 바로가 전차를 탄 선발된 정예부대 와 모든 군대를 이끌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추격하기 시작한 겁니다. 출애굽기 145-7절의 말씀입니다.

    [출 14:5 그 백성이 도망한 사실이 애굽 왕에게 알려지매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그 백성에 대하여 마음이 변하여 이르되 우리가 어찌 이같이 하여 이스라엘을 우리를 섬김에서 놓아 보내었는가 하고 6 바로가 곧 그의 병거를 갖추고 그의 백성을 데리고 갈새 7 선발된 병거 육백 대와 애굽의 모든 병거를 동원하니 지휘관들이 다 거느렸더라]

    그리고 그 군대가 이스라엘 백성 바로 맞은편까지 쫓아온 것이죠. 출애굽기 148-9절의 말씀입니다.

    [출 14:8 여호와께서 애굽 왕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의 뒤를 따르니 이스라엘 자손이 담대히 나갔음이라 9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과 그 군대가 그들의 뒤를 따라 바알스본 맞은편 비하히롯 곁 해변 그들이 장막 친 데에 미치니라]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는 지금 홍해가 흐르고 있고, 뒤에는 애굽의 모든 군대가 쫓아온 상황입니다.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후퇴하기도 어려운 진퇴양난의 상황인 것이죠.


  9. 1) 두려움: 이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땠을까요? 분명히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구원해주신다고 약속을 하셨고, 10번의 기적을 보여주셨고, 그 완강한 바로의 마음을 돌이키셔서 자신들을 노예의 삶에서 보내주었잖아요. 그리고 144절에 하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출 14:4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 내가 그와 그의 온 군대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하시매 무리가 그대로 행하니라]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해서 너희들의 뒤를 따르게 할 거다. 그리고 그 일로 인해 애굽 사람들이 내가 진짜 하나님인 것을 알게 해 줄 거다.” 그렇다면 지금 하나님의 말씀대로 일이 잘 진행되고 있는 것이 맞죠? 오히려 이스라엘 군대가 쫓아오지 않으면 걱정했어야 하는 상황이에요.


  10. 그런데도 이들의 마음은 심히 두려워했습니다.(10)’ 왜냐하면 원수는 지금 바로 내 앞에 있고, 하나님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죠. 출애굽기 1410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출 14:10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히 두려워했습니다.


  11. 2) 희생양: 두려움은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두려움의 감정이 이상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 두려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 같이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한 사람의 문제로 끌고 갑니다. 모세를 희생양으로 정합니다.


  12. 출애굽기 1411절을 읽겠습니다.

    [출 14:11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두 번이나 모세에게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라고 말하며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사실 모세가 가자고 했지만 이들이 동의해서 따라 나온 것이죠? 자신들이 힘들어서 하나님께 부르짖었던 것은 기억하지 못하고 위기가 찾아오니깐 모세 한 사람의 잘못으로 몰아갑니다.


  13. * 이런 일들은 인류의 역사 속에 많이 반복되어 왔습니다. 192391일에 일본 수도 도쿄를 중심으로 한 관동지역에 진도 7.0 이상의 강진이 발생했습니다.(관동 대지진, 간토 대지진) 민심이 흉흉해지니깐 일본정부는 자신들을 향해 불만을 갖고 있는 민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서 조선인을 희생양으로 삼았습니다.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키려 한다!’ 는 식의 유언비어를 퍼뜨린 겁니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그 소문만 믿고 분노와 증오가 가득해져서 결국 전국적으로 자경단을 구성해서 경찰, 군인과 함께 조선인을 무참하게 살해했습니다. 93일부터 약 8일 동안 대학살이 이어졌고, 이들의 만행이 도를 넘어서니깐 국가는 계엄령을 선포해서 이를 저지했습니다. 당시 무려 6000여 명(신문)에서 많게는 2만 명(외국인의 증언) 이상의 한민족이 살해 되었습니다. 일본은 이러한 사건을 자국 교과서 내용에서 학살이라는 표현을 살해로 바꿨다가 나중에는 희생이라고 바꾸고 결국 2013년 초에는 교과서에서 내용을 삭제했죠. 우리나라도 국사 교과서에 전혀 언급되지 않는 사건입니다. 나라 잃고 노예처럼 살다가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타국 땅에서 처참하게 죽어야 했던 슬픈 이야기죠.


  14. (* 또 중세 유렵 인구의 1/3을 멸절시켰다고까지 전해지는 페스트(흑사병)가 확산될 때에도 로마제국에서 ‘유대인들이 우물에 독을 뿌렸다’는 유언비어를 만들어내고 우리가 ‘마녀사냥’으로 알고 있는 인종대학살이 일어났었죠.)


  15. (* 1990년대 말에 불문학자 “르네 지라르”라는 사람이 쓴 <희생양>이라는 책에 이런 글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희생양은 신에게 봉헌된 것이 아니라 (군중들의) 거대한 폭력에 봉헌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위기를 만나면 늘 희생양을 요구한다는 것이 이 책의 중심 내용이었습니다. 군중들이 소수의 힘없는 사람들에게 문제를 뒤집어씌우고 그들을 희생시키면 문제가 해결 될 것으로 보는 겁니다.)


  16. 3) 기준이 흔들림: 희생양을 만드는 것도 안타까운 일인데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더 나아가 기준이 흔들리기 시작 합니다. 출애굽기 1412절입니다.

    [출 14:12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이스라엘 백성은 두 번이나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님보다 차라리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맞지 않겠냐는 것이죠.


  17. 지금 어떻게 되었나요? 위기를 만나고 먼저 자연스러운 감정인 1) 두려움이 생기고, 그런데 그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게 되니깐 점점 문제의 근원을 남의 탓으로 돌리며 2) 희생양을 찾게 되고, 더 나아가 3) 기준이 흔들려서 하나님이 아니라 애굽을 섬기는 데에까지 나가는 겁니다. 그 두려움이 가져다준 결과는 너무 크다는 이야기죠.


    #3. 본론Ⅱ: 모세의 담대함의 이유 – 보내심 알기, 보내신 분 알기

  18. 이런 백성들과 다르게 모세는 이렇게 말 합니다. 13절을 보니깐

    [출 14: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두려움이었죠. 그리고 눈앞의 현실을 보는 것을 넘어 하나님이 행하실 일을 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19. 출애굽기 1413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출 14: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모세가 넘나 멋있습니다. 모세 넘나 멋있는 것!’ 하나님께서 애굽으로 가라고 할 때 수없이 안 간다고 했던 모세는 어디가고, 지금 백성들을 설득하고, 그들 앞에서 카리스마 있는 모습으로 걱정마라!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것을 봐라!’ 이렇게 말 하는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이죠. 그리고 14절에서는 멋있음의 극치를 보여주는데요. 함께 출애굽기 1414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출 14: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모세는 어떻게 이렇게 담대할 수 있었나요? 오늘 두 가지로 그 이유를 나누려고 하는데요.


    1) 부르심과 보내심을 확인하라
  20. 첫 번째로 모세는 1) 자신을 보내신 분이 분명히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들었거든요. 출애굽기 1장부터 14장에 이르기까지, 특별히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신 이후에 끊임없이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 6장부터 14장까지 장마다 처음 시작하는 문장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확인) 입니다. 모세는 분명히 알았어요. 나를 보내신 분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말이죠.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분명한 방법은 바로 부르심입니다. 부르심은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을 감당하는 것을 말합니다.


  21. * 바울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 주님이 어떤 이야기를 하시나요?

    [행 9:15 ..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라고 말씀하시죠. 사울은 그 부르심이 있었기 때문에 죽었다가도 일어나서 다기 길을 가고, 자신의 길이 막혀도 계속 다른 길을 찾아갑니다. 자신은 이방인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에게 보내심을 받은 사람인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22. 예수님도 부르심을 따라 사는 분이셨습니다. 요한복음 174절 말씀을 보니깐

    [요 17: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자신을 보내신 것을 분명히 아시는 분이었습니다.


  23. * 제가 지난 3주 동안 금요예배 시간에 다른 교회 청소년들 수련회에 말씀을 전하러 다녀왔습니다. 담임목사님께서 보내주셔서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한 번도 청소년 집회를 인도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러니 어땠겠어요? 엄청 두렵죠. 청소년들 앞에 서 있는데 얼마나 두렵고 긴장이 되는지 몸이 자꾸 굳는 거예요. 그렇게 첫 집회 인도를 하고 내려왔는데 마음이 참 힘든 겁니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한 건가. 수련회를 망친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 다음 주에 집회를 준비하는데 마음이 편하지가 않은 겁니다. 그래서 설교를 준비하던 것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집회를 취소할까 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했는데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은 한 가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은혜를 받고 말고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고, 나는 그 부르심에 따라 그 장소에 가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죠. 감사하게도 첫 집회에서는 학생들이 아니라, 그 학생부 부장 선생님이 은혜를 받으셔서 수련회를 마치고 부장을 그만하려다가 다시 하겠다는 마음을 주셨다고 이야기 해주셨고, 두 번째 교회에서는 학생들이 아니라 교육목사님이 은혜를 받아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고 말씀해 주셨고, 세 번째 교회에서도 역시 부장 선생님이..


  24. 누군가의 기대를 채우기 위해서 살아가면 두려움이 생깁니다. 누군가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살아가면 결국은 만족하는 삶을 살 수가 없어요. 우리가 겪는 두려움은 내가 이것을 잘 할 수 있을까?’ 라는 불안함에서 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자리가 정말 하나님이 부르신 자리인가?’ 라는 것을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잘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보내신 자리인 것을 먼저 확인해야 하는 것이죠. ‘나’라는 존재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이 세상으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나’라는 존재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게 되었다는 것을 붙들어야 하는 것이죠. 그래야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25. 그리스도인의 삶은요. 모든 것이 부르심입니다. 결혼도 부르심이고, 직장도 부르심이에요. 교회의 직분과 봉사도 부르심입니다. 내가 선택한 일 같지만, 실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기 때문이에요. 나를 부르신 분도 하나님이고, 보내신 분도 하나님인 것을 알면 담대할 수 있습니다. 내 마음대로 결혼생활을 끝낼 수도 없고, 내 마음대로 직장생활을 끝낼 수도 없고, 내 마음대로 인생을 끝낼 수도 없죠. 나라는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부르심인데 어떻게 마음대로 살 수 있겠어요.


  26. 그러니 우리의 삶에 불안함과 두려움이 있을 때 확인해야 하는 것은 바로 부르심입니다. 나를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그 희생과 사랑을 다시 확인해야 하는 것이죠. 나의 인간적인 생각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 아니라,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어서 나를 택하시고 보내신 하나님의 부르심을 기억해야 하는 겁니다.


    2) 보내신 분이 어떤 분인지를 알라
  27. 모세가 담대할 수 있었던 두 번째 이유는 2) 보내신 분이 어떤 분인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13-14절 말씀을 다시 읽어보면요.

    [출 14: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미 구원을 이루셨고, 앞으로도 구원을 이루실 분인 것을 알았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그리고 약속을 이루시는 것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어떤 분인지를 알아가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이러한 위기 상황 속에서도 담대할 수 있었어요.


  28.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감당할 힘은 미래를 아는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나오는 겁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성경 말씀을 묵상하는 이유는 단지 경건한 행위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러한 시간을 통해 나를 보내신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예배의 자리를 지켜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배 시간에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들을 때 그분을 알아가며 성장하는 겁니다.


  29. * 김회권 교수님이 <하나님 나라 복음>(새물결플러스, 2013)라는 책에서 이런 말씀을 하세요. “시편 22편 3절에 쓰여 있는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이라는 표현에서 ‘계시다’는 동사의 히브리어는 ‘야샤브’입니다. ‘앉다’는 뜻이죠. 우리가 찬송하거나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의 보좌에 앉으셔서 다스린다는 의미입니다.”


  30. 그렇죠. 우리의 두려움을 그냥 놔두면 불신앙으로 나아가지만, 두려움의 때에 예배의 자리로 나아오고, 말씀 묵상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 가면 그분이 우리 마음의 보좌에 앉으셔서 우리를 다스리신다는 이야기입니다.


  31. 그렇기 때문에 완벽한 계획을 세워서 그 계획대로 살아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멈춰 설 수 있는 겁니다. 분주한 마르다처럼 사는 삶도 분명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러 멈춰 설 수 있는 거예요. 오늘 하루를 마감하며 유투브로 마감하는 것이 아니고, 하루를 시작할 때는 지난밤의 카톡과, 인스타그램의 댓글들을 확인하며 시작하는 것이 아니고 말씀으로 시작해야겠죠. 한 주의 하루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시간을 구분해서 말씀 앞에 멈춰 설 수 있어야겠죠. 그렇지 않으면 우리 인생은 본능에 이끌려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32. (* 책 제목인 것 같은데 이런 영어 문구가 있거든요. “Do less, be more” (적게 하고, 더 되어라) 굳이 의역을 하자면 이런 거죠. “무엇을 하려고 애를 쓰지 말고, 너의 존재가 무엇인지를 깨달아라.” 나의 계획을 완벽하게 세우기 위해서 앞도 안 보고 달려가지 말고, 하나님 앞에 멈춰 서서 그분의 말씀을 들으며 진짜 나를 찾는 겁니다.)


  33. * 지혜 중의 지혜의 말씀인 전도서에 이런 말씀이 있죠.

    [전 3: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작과 끝을 인간이 알 수 없게 하셨답니다. 왜죠? 미래를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시려는 겁니다. 미래를 아는 것보다 하나님을 알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4. 결론

  34. 두려움이라는 감정은요. 사실은 자연스러운 감정 같은데 사탄은 이 감정을 사용해서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두려움으로 인해서 우리의 자존감이 낮아지고, 두려움의 원인을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고, 결국 나아가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일까지 나아가게 하죠. 두려움은 그래서 영적인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신앙은요. 나를 보내시는 분이 분명히 있고, 말씀을 통해 그분이 어떤 분인지를 알아가는 것입니다. 이 과정이 없이 신앙을 지키기란 참 어렵습니다.


  35. * 출애굽기 주석 책 중에 한 권에서 오늘 말씀을 이렇게 표현해요. “하나님은 이 부분에서 이스라엘의 해방에 대한 언급이 없으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해방에 대해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 애굽 사람들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어떠한 일이 발생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36. 우리의 삶에 많은 어려움과 두려움이 몰려올 때, 그 두려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혹은 누군가 다른 희생양을 찾으려 하지 말고, 혹은 내가 가진 능력으로 그 두려움을 물리치려 하지 말고, 나를 보내시고 함께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담대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