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교 날짜: 2019년 9월 15일
- 설교 본문: 출애굽기 33장 12-23절
- 설교 핵심: 하나님과의 교제함을 우선으로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구별됨이다
출애굽기 33:12-23
33:12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보시옵소서 주께서 내게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
33:13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33:1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33:15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 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33:16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
33:1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 너는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고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
33:18 모세가 이르되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33:1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33:20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33:21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기를 보라 내 곁에 한 장소가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서라
33:22 내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33:23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1. 서론: 밀레니얼세대
- * 명절을 잘 보내셨나요? 인터넷을 보다가 재밌는 사진을 한 장 보았는데요. 어른들은 조카들이 반갑고 말도 걸고 싶은데 할 말이 없으니 이런 저런 근황을 물어보시잖아요. 그런데 그게 스트레스가 되는 가 봐요. 그래서 티셔츠에 “애인 없음, 졸업 내년, 취업 준비 중, #명절잔소리 #절대사절”이라고 쓰여 있는 거죠. 아마 이번 명절에도 어디 안 가고 집에서 드라마 본 청년들이 있었을 걸요?
- * 이번 연휴 기간에 시간이 좀 있어서 책을 한 권 읽었는데요. “다음소프트”라는 회사에서 쓴 책입니다. 이 회사는 무엇을 하는 회사인가 하면, ‘소셜미디어에 담겨 있는 대량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수집된 빅데이터를 분석하고, 그 분석된 결과에서 인사이트를 도출’하는 일을 하는 회사입니다. 그러니깐 쉬운 말로 하면,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살아가는 지를 연구’하는 회사에요. 그 회사에서 낸 책이 『생활변화관찰기: 2019 트렌드 노트』(북스톤, 2018)라는 책입니다. 그 책에서 밀레니얼세대를 연구했는데요. 이 세대의 첫 번째 특징이 1) “자아를 중요하게 여기는 세대”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지난해에 2030세대들이 SNS에 기록한 단어 중에 “자존감”이라는 말을 참 많이 쓴다는 겁니다.
- * 예를 들자면 이런 글이에요.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있어요. 지극히 평범하게 생겼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는데 생판 모르는 사람들한테서 외모지적을 받으니깐 자존감이 요동을 쳐요.” 라던가 “낮아진 자존감 회복을 위해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서 해요. 맛있는 식사를 하거나, 야구를 보러 가거나, 여행을 가요.” 이런 부류의 글들이 온라인에 참 많이 올라왔다는 겁니다.
- 자존감은 스스로 지키는 것이기보다는 외부로부터 존중을 받을 때 생기는 것인데, 젊은이들이 마주하는 현실에서는 자꾸만 자존감을 낮아지게 하는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이죠. 열심히 공부해서 회사에 취업한 어느 집 귀한 아들/딸인데, 직장에 가니깐 직장 상사에게 눈치만 보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자존감이 낮아지는 거죠. 누군가는 금 수저를 들고 태어나서 시작점부터가 다른 것을 보면서 자존감이 낮아지는 겁니다. 그러니깐 요즘 젊은 세대들은 유난히 “자기존중감각”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이에요.
- * 또 다른 특징은요. 2) “효율을 중요하게 여기는 세대”라는 겁니다. 스마트폰으로 ‘가장 빠른 길’을 검색하고, 실시간 도로 교통 정보에 따라 안내해주는 내비게이션을 따라 운전을 합니다.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요. 연애를 할 때도 자신이 바라는 이성에 대하여 정보를 기록하면, 그와 가장 잘 어울리는 상대방을 찾아주는 스마트폰 어플이나, 결혼 정보 회사를 이용하는 거죠. 이 젊은 세대들은 ‘실패 하면서 배워’라는 말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쉽게 성공할 수 있도록 인생 선배들의 ‘꿀팁’을 찾는 세대라는 것이죠.
- * 그래서 쇼핑을 할 때도 크게 두 가지로 나눠진다고 해요. ① ‘의무를 위한 소비’가 있고, ② ‘로망을 위한 소비’가 있습니다. 의무를 위한 소비는 최대한 저렴하게 하는 쇼핑이죠. 가격 대비 성능이 가장 좋은 곳을 찾아갑니다. ‘다이소’나 ‘차이슨’, ‘노브랜드’같은 가성비 좋은 것들을 찾아다녀요. / 그러나 로망을 위한 소비도 합니다. ‘내 심장을 뛰게 한다면 가격 따위는 상관하지 않는 소비’가 로망을 위한 소비에요. 그래서 “식비는 줄여도 문화 생활비는 줄일 수 없다.” 는 것이 바로 젊은 세대의 특징입니다. 밥은 안 먹어도, 루프탑 카페에서 밥값보다 비싼 커피는 마셔주는 거죠. 내 심장을 뛰게 해주는 장소라면 밥 따위야 한 끼 안 먹는다고 죽지 않는다는 거죠.
-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해 보니깐, 꼭 젊은 세대만 그런 건 아닙니다. 자기존중감각을 중요하게 여기고, 효율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성경 속에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였어요.
#2. 본론Ⅰ: 나를 높여주신 하나님께 다시 영광을 돌려 드리는 삶 - 오늘 우리가 출애굽기 33장을 읽었습니다. 지난번엔 16장을 읽었죠. 그리고 갑자기 33장으로 훌쩍 넘어왔네요. 물론 출애굽기는 40장까지 있고, 우리가 출애굽기라는 말씀 속에서 다 나누지 못한 이야기가 많이 있지만 오늘 이 10번 째 출애굽기 말씀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내신’ 하나님의 마음을 함께 정리하며 출애굽기를 마치려고 합니다.
-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약 400년의 기간을 머물렀습니다. 처음에는 귀빈으로 대접을 받으며 지내다가 시간이 흘러 노예 생활을 하게 되고, 그 고통이 너무 심해졌을 때 하나님을 부르짖게 되죠. 하나님께서 그들의 고통을 들으시고 안타까워하시며 구원하시기로 작정을 하셨습니다. 출애굽기 3장 16b-17절을 새번역 버전으로 함께 읽겠습니다.
[출 3:16b .. 이렇게 전하여라. ‘내가 너희의 처지를 생각한다. 너희가 이집트에서 겪는 일을 똑똑히 보았으니, 17 이집트에서 고난받는 너희를 내가 이끌어내어,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이 사는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올라가기로 작정하였다’ 하여라.(새번역)]
이스라엘은 부르짖었고,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리고 가기로 ‘작정하신’ 겁니다.
- 이 약속은 모든 사람에게 주신 약속이었어요. 출애굽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만 있던 것이 아니고 ‘수많은 잡족’들이 있었다고 했거든요.
[출 12:38 수많은 잡족과 양과 소와 심히 많은 가축이 그들과 함께 하였으며]
민족의 배경이 어떠하든, 어떤 삶을 살았든 상관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나온 백성들을 하나님은 “내 백성”이라고 말씀하시며 인도해 주신 거예요. 기적을 보여주시고, 홍해를 가르시고, 만나와 메추리를 하늘에서 내려주셨죠. 엘림을 만나게 해주시고, 부족한 것이 없이 인도해주셨습니다. ‘가는 길이 힘들다. 돌아가고 싶다. 우리를 굶겨서 죽일 셈이냐. 하나님을 섬기는 것보다 바로 왕을 섬기며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것이 더 좋다’ 며 온갖 불평불만을 쏟아 놓을 때에도 이들을 다 품어주셨거든요.
- 그리고 출애굽기 19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친히 시내산으로 내려오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당신의 소유”로 삼아주셨어요. 출애굽기 19장 4-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출 19:4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내가 품고 업어서 인도했다! 온 세계가 다 내게 속한 것인데, 온 세계의 주인인 내가 너희를 ‘내 소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삼아주겠다.” 는 약속을 하신 거예요.
- 여러분 이것이 얼마나 감사한 말씀인가요? 이스라엘 백성은 삶이 힘들고 고통스러워서 부르짖은 것뿐인데,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그 힘겨운 삶에서 인도해내시고,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다는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이 뭐 한 게 있나요? 부르짖은 것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업어서 인도하셨고, 품어주셨고, 자신의 소유로 삼아주셨다는 거예요.
- 그러고 나서 20장부터 오늘 읽은 말씀 전인 31장까지 ‘나의 소유인 너희들이 지켜야 할 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20장에서 ‘십계명’을 시작으로, ‘제단 만드는 법, 노예 관련 법, 폭력에 대한 법, 배상에 대한 법, 안식년, 언약궤 만드는 법, 성막 짓는 법, 등’을 가르치시는 거예요.
- 우리가 출애굽기 말씀을 통해 깨닫는 중요한 진리 한 가지는 바로 ‘신앙의 순서’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잘 믿어서 그분의 백성이 된 것이 아니에요. 내가 좀 남들과 다른 괜찮은 사람이어서 하나님의 소유가 된 것이 아닙니다. 나는 다만 부르짖었을 뿐이고, 하나님께서 나를 당신의 소유로 삼아주신 거예요. 그렇게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니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겁니다.
- 하나님은 우리의 ‘어떠함’ 때문에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고통 중에 부르짖는 것을 아시는 분이기 때문에 우리를 인도하시는 거예요. ‘나’라는 존재를 그냥 사랑하시는 겁니다.
- 우리는 ‘자기존중감각’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죠? 그래서 자존감이 낮아질까 봐 두려워하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은 당신 자신보다 우리를 더 높여주고 싶어 하시는 분이세요. 당신의 자아 존중 감각은 전부 내려놓으시고, 하늘 보좌를 버리고 땅으로 내려오신 분이에요. 왜요? 남들과 비교하며 낮아진 자존감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을 높여주시려고. ‘넌 내가 인도하는 사람이다! 너는 나의 소유다! 너는 내가 택한 거룩한 백성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우울해 하지 마라!’
- 하나님이 그런 분이시기 때문에, 그 사실을 깨달은 우리는 우리의 온 삶을 다해서 나를 높여주신 하나님께 그 영광을 다시 돌려드리는 삶을 살아가는 겁니다. 어떻게요? 그분의 말씀을 지키는 것을 통해. 높아진 자존감을 가지고 내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께 다시 영광을 올려드리는 거예요. 그것이 출애굽기를 통해 깨닫는 첫 번째 메시지입니다.
#3. 본론Ⅱ: 목적지가 아니라 이스라엘 자체와 교제하기 원하시는 하나님
-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의 낮아진 자존감을 높여 주시고 싶어 하시는 분이에요.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은 달랐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기간이 길어지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가는 시간이 늦어지니깐 이런 이야기를 해요. 출애굽기 32장 1절 말씀입니다.
[출 32:1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여기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알 수 있어요. 그건 바로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입니다. 어디로 갈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길을 안내해 줄 사람, 목적지로 가는 길을 안내해 줄 신이 필요한 거예요. 그게 어느 신이든 상관없이, 다만 불안한 미래를 좀 안정시켜줄 신을 찾고 있는 겁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안전하게 가는 것’이 이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던 가치였던 거예요.
- * 이번 명절에 상황이 좀 여의치 않아서 아내만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 다녀왔거든요. 다행히 처제가 함께 다녀온다고 해서 아이들과 아내가 같이 갈 수 있었죠. 혹시나 아빠가 안 간다고 하면 애들이 떼를 쓰고 울까봐 걱정이 되어서, 기차를 타기 전에 많이 놀아줬죠. 그리고 기차가 출발하기 전에 우유를 사러 편의점에 갔습니다. 근데 첫째 아들이 편의점 입구에 있는 장난감을 본 거예요. 그리고 그 때부터 ‘자기는 우유가 먹고 싶지 않고 장난감이 사고 싶다’ 는 거예요. 단호하게 거절하고 우유만 사서 나왔어요. 그리고 이제 기차를 탈시간이 되어서 첫째에게 ‘아빠는 서준이랑 같이 기차 안 탈거야. 엄마랑 이모랑 서우만 가는 거야.’ 힘들게 이야기를 꺼냈는데, 글쎄 이 녀석이 곧바로 제 손을 놓고 이모의 손을 잡는 겁니다. 혹시나 둘째 아들이 울까봐 봤더니 이모가 주는 빵을 먹으면서 저에게는 덤덤하게 손을 흔들고 있는 거죠. 배신감. 아들 키우면 다 소용없습니다. 여러분 꼭 딸 낳으세요.
- 하나님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런 느낌이었을까요? 하나님께서 화를 내세요. 저 이스라엘 백성들 다 죽이겠다는 말씀을 하십니다(출32:9-10). 그런데 다행히도 모세가 하나님을 막아서죠.
-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출애굽기 33장 1-3절 말씀입니다.
[출 33: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백성과 함께 여기를 떠나서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네 자손에게 주기로 한 그 땅으로 올라가라 2 내가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어 가나안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고 3 너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길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 하시니]
하나님께서 화가 단단히 나셨어요. 1절에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백성’이라고 하시죠. 그러면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하나님께서 주기로 한 땅으로 가게 합니다. 그냥 가는 것이 아니라 사자를 앞서 보내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전부 쫓아내시겠다는 말씀도 하세요(2절). 그런데 3절에서 어떻게 말씀하시나요? 하나님께서 “나는 함께 가지 않는다.” 는 말씀을 하십니다.
- 처음에 이 말씀을 읽었을 때는 정말 충격이었어요. 출애굽기는 분명히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 목적인 줄 알았는데, 이 부분에서 하나님께서 ‘너희는 가, 나는 안 간다!’ 고 말씀하시는 거죠.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애굽에서 나온 목적이 가나안에 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통당하는 애굽의 노예의 삶에서 벗어난 이유가, 단순히 가나안에 들어가서 자유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그렇다면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애굽에서 나온 목적, 하나님이 정말 중요하게 여기신 가치는요. 바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구별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교제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었어요. 그 힌트가 출애굽기 3장 18절에 나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출 3:18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너는 그들의 장로들과 함께 애굽 왕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사흘길쯤 광야로 가도록 허락하소서 하라]
모세는 알고 있었죠. 그래서 애굽 왕에게 분명하게 말 한 겁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 (이 말씀을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실 때 한 번 더 이야기를 하시는데요. 출애굽기 23장 24-25절 말씀입니다. [출 23:24 너는 그들의 신을 경배하지 말며 섬기지 말며 그들의 행위를 본받지 말고 그것들을 다 깨뜨리며 그들의 주상을 부수고 25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리하면 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서 병을 제하리니] 여기에서 ‘섬기라’는 단어가 곧 ‘예배하다’는 단어입니다.)
- 하루 벌어 하루 살기에 바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살았을까요? 아니요. 그들은 400년이 지나서 고통을 받을 때에야 한 번 하나님을 부르짖었습니다. 그저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는 것에만 관심이 있던 사람들이에요. 그러니 하나님을 만나서도 그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는 것에만 관심이 있던 겁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 하나님과 교제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 여러분, 효율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밀레니얼 세대만의 특징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똑같았어요. 누구든 좋으니 나에게 좀 안정을 달라는 겁니다. 안정적인 미래를 좀 보장해 달라는 것이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라던 중요한 가치는 ‘목적지에 이르는 것’이었습니다. 모세도, 하나님도 안 보이니 다른 신으로 바꿔서라도 목적지에 가면 된다는 것이죠. 그러나 하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은 바로 ‘함께 교제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자체였죠.
#4. 본론Ⅲ: 하나님과의 교제, 예배란 무엇인가? - 그렇다면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그 이야기를 해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직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가려고만 할 때, 모세는 날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 역시 가나안에 들어가고 싶었을 거예요. 그런데 꼭 가나안에 들어가지 않아도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는 만족을 누렸던 겁니다. 오늘 모세가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 속에 나타난 세 가지를 나누고 말씀을 마치려고 하는데요.
- 1) 하나님과의 교제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다. 12-13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출 33:12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보시옵소서 주께서 내게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 13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모세의 첫 번째 고백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주님이 ‘나를 아시는 것’처럼 ‘나도 주를 알게’ 하옵소서.”입니다.
-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하나님과 교제하기 원한다면, 감정적으로 추상적으로 하나님과 대화하기 이전에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배워야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그분께서 하신 일에 대해, 어떤 기준으로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지를 알아가는 것이죠. 그러려면 모세가 이렇게 ‘내게 주를 알리시고’라고 기도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겠죠. 그러면 무엇보다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지 않으면서 하나님과 교제할 수는 없습니다. 말씀과 멀리 떨어져서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간다고 할 수는 없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요. 나도 모르게 이 세상의 가치대로 살게 되는 거예요.
- * 제가 요즘 종교 교육에 대해 공부를 하거든요. 여러 가지 종교에 대해 배우고, 그 종교를 실제 학생들에게 어떻게 가르치는지를 배웁니다. 그런데 교수님들께서 하시는 말씀은 ‘기독교’를 ‘여러 종교 중의 하나로 가르쳐야 한다’ 는 겁니다. 맞는 말이에요. 기독교는 종교가 맞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종교라는 틀 안에 머무시는 분이 아니세요. 완전히 삶을 뒤바꾸시는 분이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기독교를 너무 문화로만 받아들이려는 경향이 있어요. ‘너는 불교? 너는 천주교? 나는 개신교야.’ 이런 식으로 말이죠. 그러면 ‘다양한 통로를 통해서 목적지에만 도달하면 되는 게 아니냐!’ 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왜요? 성경을 읽지 않으니 그렇습니다. 그냥 기독교 문화가 좋은 거예요. 아니에요. 성경을 읽으셔야 합니다. 배우셔야 해요.
- 2) 하나님과의 교제는 하나님과 함께함이다. 15-16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출 33:15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 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16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
하나님과의 교제는 말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나의 야망의 도구로 삼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계시는 곳에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 감사하며 만족하는 것이죠.
- 그래서 16절에서 이렇게 말 하고 있잖아요. “그리스도인의 구별됨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과 다른 점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인생에서 성공한 삶을 살았는가!’ 가 아닙니다. 하나님과 함께한 삶을 살았는가 아닌가로 구별이 되는 것이죠.
-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것은 이런 겁니다. 지극히 작은 사람에게 대하는 나의 태도를 보면 됩니다. 이 세상은요. 나의 욕망을 위해서 지극히 작은 자들을 짓밟고 무시합니다. 힘없고 아무 줄도 없고 빽도 없는 사람들은 대충 쓰다가 버려도 된다는 생각이 가득해요. 그러나 나의 삶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그 지극히 작은 한 사람에게 대하는 태도가 곧 하나님께 대하는 나의 태도입니다. 그들과 함께하는 것이 곧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이죠.
- 3) 하나님과의 교제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이다. 18-23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출 33:18 모세가 이르되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1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20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21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기를 보라 내 곁에 한 장소가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서라 22 내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23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는 것은 여러 해석으로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주권대로 행하시라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은혜 베푸실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긍휼히 여기실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시라’는 것이죠.
- 두 번째는 ‘하나님의 덮어주심을 바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는 말은 하나님을 보고 싶다는 말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볼 수 있을까요? 죄 있는 사람이 하나님을 보면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의 요구를 들어주시기 위해 당신의 손으로 그를 덮어주십니다. 그의 허물을 덮고 등을 보여주시는 것이죠.
-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의 허물과 죄를 덮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아니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죠. 그러니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나의 죄를 덮으셔서 내가 지금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음을 날마다 기억하며 사는 것입니다.
#5. 결론
-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중요한 가치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 가지로 정리했죠. 1)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 2) 지극히 작은 자에게 대하는 태도를 통해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 3)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나의 죄를 덮는 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내 인생의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살아가는 삶이 곧 구별된 삶입니다.
- * 100주년 기념교회 이재철 목사님이 설교 중에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말씀을 듣다가 참 은혜가 되고 오늘 말씀을 잘 요약하는 것 같아서 적어놓았는데요. 이런 말씀입니다.
“거룩하다는 뜻의 히브리어 ‘카다쉬’는 원래 ‘구별하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힘은 자기 자신을 자기 욕망의 노예였던 종전의 삶에서 구별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자기 삶의 목적이었던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자기 자신을 우상으로 섬기는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그 구별은 귀로 들은 주님의 말씀을 삶으로도 듣기 위해 자기를 부인할 때 가능합니다. 그 구별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거룩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힘은 연봉의 액수나 앉아 있는 의자의 높이가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구별하는 거룩에서 나옵니다. 귀로 들은 주님의 말씀을 삶으로도 듣기 위해 자기를 부인하며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구별하면 구별 할수록 그리스도인은 더 거룩해 집니다.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외톨이가 되지 않고 세상과 구별된 거룩으로 도리어 세상을 새롭게 소생시키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추구하는 믿음과 거룩의 역설입니다.” (이재철, “서로 맞지 아니하여” 2018.8.19. 설교 말씀 중)
‘우리는 세상과 구별되지만, 그 구별됨으로 이 세상을 새롭게 하는 사람들’이라는 말씀이 참 은혜가 되더라고요.
- “우리가 삶의 우선순위를 정해놓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내 삶의 우선선위를 정할 것입니다.”(그렉 맥커운, 『에센셜리즘』, 22.) 하나님과의 교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삶을 우선으로 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저 자신의 욕망을 따라 살다가 죽게 될 것입니다. 나의 욕망을 따라 살아가는 애굽의 삶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교제하는 광야의 자리로 나아가는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저와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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