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명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신라 시대부터 지켜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설날의 의의는, 한 해의 첫날을 맞아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해준 조상들의 수고와 은덕을 기리고, 살아 있는 가족 간의 사랑과 결속을 다지는 데 있습니다. 설날은 ‘설다’ ‘낯설다’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낯선 날’ 즉, ‘익숙하지 않은 날’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한 해의 첫날을 낯선 날로 부른 것은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낯선 한해를 맞기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조상들이 ‘삼갈 신’(愼) 자를 사용하여 ‘신일(愼日: 삼가고 조심하는 날)’이라고 부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중 누구도 2020년 1월 26일을 살아본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가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삶을 사는 것이죠. 그 낯선 한 해의 시작을 삼가고 조심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우리 조상들의 지혜에 다시 한번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성경의 지혜 중의 지혜서라고 불리는 잠언에는 ‘삼가다’는 말이 여러 번 사용됩니다.
아름다운 여인이 삼가지 아니하는 것은 마치 돼지 코에 금 고리 같으니라 (잠언 11:22, 개역개정)
어리석은 자는 온갖 말을 믿으나 슬기로운 자는 자기의 행동을 삼가느니라 (잠언 14:15, 개역개정)
네가 관원과 함께 앉아 음식을 먹게 되거든 삼가 네 앞에 있는 자가 누구인지를 생각하며 (잠언 23:1, 개역개정)
아름다운 여인에게 필요한 것은 그를 더욱 빛나게 해줄 ‘금 고리’가 아니었습니다. 지혜자는 진정한 아름다움은 절제할 줄 아는 모습이라고 말합니다. 어리석음과 슬기로움의 차이는 얼마나 많이 듣고, 얼마나 많이 깨닫는 것의 차이가 아닙니다. 자신의 행동을 얼마나 절제하느냐의 차이에서 어리석음과 슬기로움의 차이가 판가름 납니다. 또한,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욕망을 분출해야 하는 장소를 아는 사람입니다.
최근 들어 젊은이들이 추구하는 삶의 방식은 ‘미니멀 라이프’입니다. 그 삶의 방식에서 반드시 필요한 태도는 ‘꼭 필요한 것만 남기고 필요 없는 것들은 과감히 버릴 수 있는 용기’입니다.
우리가 새로운 한 해를 마주하며 세운 계획들이 실패로 마무리되는 이유 중 하나는 어쩌면 너무 많은 것을 하려고 해서 그런 것인지도 모릅니다. 반드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고 이것저것을 전부 하고 싶은 욕심에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후회만 남기게 되는 것이죠.
미니멀 라이프의 삶을 보여준 분 중에 한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의 삶의 목적은 오직 한 가지였습니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오직 그 한 가지만을 보고 사셨기에, 그 목표를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삶에서도 미니멀 라이프가 필요하듯이, 신앙의 영역에서도 미니멀 라이프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잠언 기자의 말처럼 ‘삼가’는 일이죠. 조상들의 마음처럼 새롭게 시작하는 날을 ‘삼가는 자세’로 임하는 것이죠. 너무 많은 것을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그 욕심을 삼가고, 열정을 삼가며, 말과 행동을 삼가는 사람이 되는 것 아닐까요.
2019년 6월에 갈렙 청년부를 맡으면서 하고 싶은 것이 참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욕심’일 뿐, 하나님의 마음도 아니고 여러분들이 마음도 아니라는 것을 지난 몇 개월 동안 깨닫게 되었습니다. 2020년을 생각하며 세운 많은 계획이 있지만 모든 것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예배와 기도’ 그리고 ‘말씀’은 포기할 수 없습니다. 갈렙 공동체가 예배와 기도 그리고 말씀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죠. 그 일을 위해 포기해야 할 것들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2020년을 시작하며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계획을 세움과 동시에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계획을 세워보는 것은 어떨까요. ‘잠들기 전에 스마트폰 하지 않기’, ‘하루에 더도 말고 성경 한 장씩 읽기’, ‘한 번의 예배도 진실한 마음으로 임하기’, ‘쓸모없는 지출 줄이기’ 등이 제가 추천하는 바입니다. 삼가는 삶이 지혜로운 삶입니다. 삼갈 줄 아는 사람이 진정 아름다운 사람이고, 슬기로운 사람입니다.
셀 모임에서 함께 책을 읽으려는 이유는 너무 과한 ‘삶의 나눔’을 줄이고, ‘말씀의 나눔’에 집중하려는 것입니다. 물론 삶의 나눔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 또한 분명 소중합니다. 그러나 한 주의 1시간도 채 안 되는 신앙의 교제 시간을 조금 더 집중하여 보내고 싶은 마음이죠. 3월부터는 청년 예배가 분리됩니다. 장소의 변경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일을 계획하시고 이끌어가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함께 기도로 준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원래 2월 14-15일에 있을 수련회는 2월 28-29일로 변경되었습니다. 분명히 ‘쉼과 채움’이 있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삼가고 조심하는 마음으로 한 해를 시작합시다. 불안하고 두려운 미지의 날들이지만 갈렙 공동체와 함께 할 수 있다면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닐 것입니다. 갈렙 공동체와 함께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끌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새해에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삼가는 지혜와 사랑이 있기를 바라며,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2020년 1월 26일
유동근 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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