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는 이유를 모른다.
장미는 피기 때문에 핀다.
장미는 자신에게 관심이 없고
누가 자기를 보는지 묻지 않는다.
독일의 시인 안겔루스 질레지우스(Angelus Silesius, 1624-1677)의 시입니다. 그가 이런 시를 쓰게 된 것은 신학자 에크하르트(Meister Johannes Eckhart, 1260~1327)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에크하르트는 “하나님이 왜 인간이 되셨는가?” 라는 물음에 전통 신학처럼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혹은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는 하나님께서 왜 인간이 되셨는가라는 질문에 “장미는 피기 때문에 핀다.”라고 대답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오신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는 것이죠. 에크하르트가 성경을 통해 발견한 하나님께서 그런 행동을 하시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바로 그분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신앙을 갖는 것이 어떤 유익이 있는지?’ 를 묻습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신앙의 영역에서 ‘이익’을 찾고 있는 이 물음이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에 살아온 우리에게는 ‘득(得)과 실(失)’을 따지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신앙의 영역에서도 유용성(utility)를 묻는 것을 보면 우리의 삶의 태도가 너무나 자본주의화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유용하지 않은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죠.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일주일에 하루 쉬는 날에 차려 입고 밖에 나와야 하는 것 말입니다. 사람에게 지쳐서 혼자 있고 싶은 현대인들에게 사람들을 만나는 일들 말이죠. 내 삶에 도움이 되는 것 같지도 않고, 큰 의미도 없는 봉사와 헌신들 말입니다. 마음을 울리는 좋은 글귀들이 널려 있는 이때에 2000년도 넘은 고서(古書)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이미 유투브에는 나를 성숙하게 해줄 공짜 교육들이 널려 있는데 졸리기만 한 설교가 도대체 우리의 삶에 무슨 유익이 있을까요?
기실 신앙이 손해 보는 일만은 아닙니다. 내 이야기에 공감해주는 편한 사람들을 만나는데 이정도 시간쯤이야 쓰는 것은 아까운 일이 아닙니다. 천국이라는 미래에 황금 집 짓는 일에 투자(?)하듯 보험의 개념으로 헌금을 한다면 큰 손해도 아닙니다. 봉사나 단체 활동 참여 등 내 삶에 이정도 희생쯤이야 해줘야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이니 딱히 나쁠 일도 없습니다. 그러나 신앙에서 손해와 이익의 ‘이해관계(利害關係)’를 찾는 추구하는 순간, 우리의 신앙은 변질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니, 이미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칼 바르트는 우리가 하나님을 신앙하는 이유가 유용성에 있지 않고 ‘아름다움’에 있다고 했습니다. 어거스틴도 하나님은 사용의 대상이 아니라 ‘향유’의 대상이라고 했지요. 삶의 모든 부분에서 이익과 손해를 따지는 일에 물들어버린 우리의 삶의 모습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적용되는 것을 안타깝게 본 것이죠.
하나님을 신앙하는 아름다움을 누리면 좋겠습니다. 얼마나 나의 삶에 도움이 되는지를 따지기 전에, 하나님 그분 자체를 경험하고 그 아름다움을 고백할 수 있는 것이 성숙한 신앙의 모습일 것입니다.
청년 리더십 훈련 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성경묵상모임”(LTC 102)은 온라인 모임으로 묵상 나눔을 시작했고, “순전한 기독교”(LTC 201)은 매주 토요일에 모이고 있으며,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LTC 301)은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에 모여서 나눔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쁜 시간을 내주어 참여한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입니다. 이 과정을 잘 마칠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더 풍성한 과정들이 준비될 것이니 많은 청년들이 함께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10월 생일을 맞은 이진리 자매의 생일(10/25)을 축하합니다. 오늘(10/6)은 9-10월 생일 축하 겸, 셀별 요리대회가 있습니다. 갑자기 준비된 행사이지만 열정을 다해 동참해주어 감사합니다. 10월 마지막 주일(10/27)은 온 교회가 추수감사주일로 드립니다. 11월 10일은 2019년 청년부 총회가 있을 예정입니다.
벌써 가을입니다. 계절의 아름다움을 누리기에 참 좋은 때이죠.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함께 말입니다. 그 아름다움을 함께 향유할 수 있는 좋은 갈렙 청년 여러분들을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2019년 10월 6일
유동근 목사 드림
'목회서신_THE LETTER TO CALEB'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하시겠습니까? <제16호 (20191110)> (0) | 2020.03.24 |
---|---|
책 한 권 읽을 여유가 있나요 <제15호 (20191103)> (0) | 2020.03.24 |
신앙과 교육 <제13호 (20190915)> (0) | 2020.03.24 |
핵심가치 <제12호 (20190908)> (0) | 2020.03.24 |
내일을 살아가는 오늘 <제11호 (20190901)> (0) | 2020.03.24 |